'새로운 불' 대체에너지 개발은 얼핏 非경제적으로 보이지만환경·건강·OPEC 담합 폐해 등 숨은 비용 감안하면 훨씬 이득투자·인센티브·혁신 '3I' 통해 車 경량화·건물 디자인 개선 등 에너지 효율 제고도 병행해야
지난해 11월 12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일본프레스센터빌딩 10층 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오랜만에 대형 기자회견장에 섰다. 정계은퇴 뒤에도 세간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홀을 메운 300명 가까운 기자 앞에 선 것은 2006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 거의 처음이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반대 발언을 더러 해왔는데 지난해 8월 핀란드 온카로 핵폐기물 최종처분장을 시찰하고 왔다는 기사가 나간 뒤 취재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래서 그냥 이런 자리를 빌려 한 번에 다 말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의 한 보수신문이 그의 '원전제로' 주장을 비판한 것을 거론하며 그 지적에 무슨 잘못이 있는지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일본 내에서는 고이즈의 '탈원전'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집권 당시 '원자력입국계획'이라는 적극적인 원전 정책을 추진한 사람이 지금 와서 무슨 탈원전이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그런 극적인 변신을 했기 때문에 주장에 더 눈길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발언과 일본 언론 기사를 종합하면 변신을 만들어낸 눈에 띄는 계기가 세 가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3ㆍ11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핀란드 온카로 핵폐기물 처분장 방문. 그리고 또 하나가 기자회견이 있기 얼마 전 읽었다는 책 한 권이다. 미국의 재생에너지 연구가 에머리 로빈스 록키마운틴연구 회장이 쓴 (Reinventing Fire)다.
그는 2011년 출간돼 이듬해 일본에서 번역돼 나온 이 책을 후배 의원에게서 추천 받아 읽었다며 "미국에서 탈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2050년에는 탈원전, 탈석유, 탈석탄, 탈천연가스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일본을 앞질러 미국이 탈원전을 할지도 모른다"며 "정말 도움되는 책"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로빈스 회장은 이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
로빈스는 책에서 새로운 불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새로운 불을 오래된 불과 대비해 오래된 불은 아래에서 파내었다면 새로운 불은 위에서 흐르고, 오래된 불이 부족하다면 새로운 불은 풍부하다고 말한다. 또한 오래된 불이 지역적이라면, 새로운 불은 어느 곳에나 있고 오래된 불은 일시적이지만 새로운 불은 영구적이라고 한다.
새로운 불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에너지를 되도록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재생에너지다.
이 책은 두 가지 큰 질문에 답한다. "미국이 현실적으로 석유와 석탄의 사용을 2050년까지 끝낼 수 있을까" "이런 변화의 주역인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은 가능할까, 재생에너지가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의 변화, 기업의 기술혁신, 그리고 정부의 공공정책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로빈스는 먼저 화석연료가 인류 역사상 굉장히 혁명적이었지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말한다. 대체에너지 개발은 얼른 보기에 비경제적이지만 감춰진 비용까지 감안하면 석유나 석탄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감춰진 비용이란 환경문제, 건강문제, 전쟁 그리고 석유수출기구(OPEC)의 담합 등으로 생기는 위기 등 쉽게 수치로 표시할 수 없는 비용들이다.
그는 에너지혁명을 통해 '안전' '경제' '환경' '보건'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혁명을 위해서는 교통, 건물, 산업, 전기생산 분야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수요을 조절하고, 공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시장이 커진다면 이를 통해 2050년에는 3조8,000억 원의 순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어 로빈스는 운송분야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절약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운송은 주택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에서 에너지 소비가 많은 분야다. 먼저 가볍고 강한 에너지 효율적인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소비자도 변해야 한다. 친환경차를 사면 돈을 돌려 주는 정책 같은 것이다. 소비자들은 카풀과 자전거 출퇴근으로 이런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디자인 개선, 설비 개량, 적절한 교체를 들었다. 도요타가 지은 친환경 건물은 빛과 난방이 제일 잘 되는 공간에 방을 놓고 좋은 단열재 등을 사용해 에너지 비용을 60% 절감했다고 소개한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재료와 신기술을 적절한 타이밍에 갖춰 놓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많은 기술이 개발돼 있어 충분히 변화가 가능한데도 절약의 장점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에너지 효율화가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보 제공과 인센티브 등의 정책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이는 에너지 소비가 공급자의 이윤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을 말한다. 이 관계로 인해 기업이 에너지 소비 방식의 혁신을 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에서 어떻게 새로운 불을 일으킬 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에너지 효율 달성과 낭비를 줄여 2050년까지 미국 산업에서 사용하는 총 에너지의 27%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혁신은 '3I'로 가능하다. '투자(Investment)' '인센티브(Incentives)' '혁신(Innovation)'이다. 투자는 공장 기계에 대한 투자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말한다. 혁신은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보장해준다. 인센티브는 올바른 행동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이어 그는 미국 전기시스템이 변해갈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목표는 화석 연료를 제거하고 효율 좋은 전기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적어도 80%의 전기를 재생자원으로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은 '이동(Migrate)' '갱신(Renew)' '변화(Transformation)'이다. 이동 '탄소제로 전기'로 바꿔 나가는 방식이다. 원자력과 이산화탄소포집저장(CCS) 기술 전환하는 것이다. 갱신은 태양열, 풍력, 수력 등 다양한 자연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변화로 전력 배송방식(grid)의 변화를 말한다. 대형발전소에서 만들어 아래로 전기를 공급하는 지금과 정반대로 아래에서 만들어 위로 보내는 방식이다.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그는 '변화'를 미국이 나아갈 방향으로 꼽았다. 기술적으로도 가능하며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이며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불의 창조란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자는 게 아니다. 그것은 무한에너지의 창조라는 인류의 오래된 꿈을 달성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불의 재발견을 '적청녹 에너지 아젠다'(Red Green Blue Energy Agenda)라고 부른다. 새로운 불의 창조는 자국의 안전을 지키고 경제를 키우며 나아가 깨끗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선택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업이나 소비자 혹은 정부 중 어느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모든 분야의 사람들의 협력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탈원전 주장이 현실적이라는 근거로 로빈스의 논리를 제시한 뒤 총리 시절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중요한 것은 '정치'라고 강조했다.
"지금 야당은 모두 '원전제로'에 찬성이고 반대는 자민당 뿐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물어보면 자민당 의원도 반반일 거다. 이 시점에서 아베 총리가 원전을 다 없애고 자연에너지로 나라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정하면 대놓고 반대할 사람 몇 없다. 아베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쓸 수 있는 참으로 운이 좋은 총리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자민당이 '원전제로'에 찬성하면 모든 정당이 찬성이니까 갖가지 방법론이 야당에서도, 전문가들한테서도 나올 것이다. 그걸로 추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살리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이태우기자 abcdefg@hk.co.kr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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