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협력자 김모(61)씨를 통해 구한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 명의의 출입경기록 정황설명 답변서가 위조로 확인되면서, 진실규명의 초점은 핵심 문서인 유우성(34)씨의 북한-중국 출입경기록으로 옮겨졌다. 국정원과 검찰이 출입경기록의 위조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법정 제출을 강행했다면 애당초 증거 조작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국정원은 지난해 8월 22일 1심에서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2006년 5,6월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확보에 집중했다. 유씨가 2006년 5월 27일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6월 10일 중국으로 나왔다는 주장을 기록을 통해 입증하면 그가 이 기간에 북한 보위부에 포섭됐다는 공소사실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1심 결과를 뒤집겠다며 구해 와 지난해 11월 1일 법원에 제출한 출입경기록에 대해 중국 정부는 지난달 "위조됐다"고 통보했다.
국정원은 이 출입경기록에 대해 여전히 "위조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 기록은 김씨와는 또 다른 외부 협력자(잠적)가 구해 온 것인데 진본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정황을 되짚어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정원이 출입경기록 위조에 개입했거나 위조 사실을 알았다고 볼 만한 정황들이다. 국정원에서 파견한 주선양(瀋陽) 총영사관의 이인철 영사는 지난해 9월 26일과 27일 하루 간격으로 상반된 내용의 출입경기록을 인증했다. 중국측 회신 내용에 비춰보면 이 영사는 26일 위조본(출-입-출-입)을, 27일에는 진본(출-입-입-입)을 인증했고, 재판부에는 위조본이 제출됐다. 결국 국정원이 진본과 위조본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가 위조본을 제출한 셈이어서 국정원이 최종 제출 문서를 진본으로 믿었다는 주장을 그대로 믿기 힘든 상황이다.
검찰도 국정원이 건넨 출입경기록을 별다른 검증 없이 법원에 그대로 제출했다는 점에서 의심을 사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이 수사단계에서 '출-입-입-입' 기록을 먼저 구해왔지만 관인이 없어 다시 요구하자 (관인이 찍힌) '출-입-출-입'기록을 가져와 재판부에 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증거능력을 부여 받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검찰이 국정원으로부터 상반된 내용의 문서를 전달 받고도 위조 가능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2건의 출입경기록에는 모두 이 영사 명의의 영사인증서가 첨부돼 있었다. 검찰이 의심조차 하지 않을 만큼 무능하지 않다면 '미필적 고의'로 눈 감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향후 서울중앙지검 간첩증거조작 수사팀이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국기록(①번 문서)이 위조됐고 그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면, 나머지 2건의 위조에도 국정원이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검찰과 국정원이 제출한 출입경기록 발급확인서(②)와 싼허변방검사참의 답변서(③)는 모두 ①번 문서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보강자료이기 때문이다. ③번 문서는 이미 국정원 협력자 김씨의 진술로 위조로 밝혀졌고, ①번, ②번 문서도 중국 정부가 위조로 통보해 수사팀의 최종 확인만 남아 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국정원이 출입경기록의 위조 여부를 알았다면 흐름상 이를 뒷받침하는 나머지 2개의 문서 위조에도 모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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