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령이 그네 뛰는 춘향을 만나 수작을 부린 후, 그날 저녁 춘향의 집에 찾아간다. 그녀의 집에는 그림이 빼곡히 걸려있다. 동쪽 벽에는 도연명이 평택령을 마다하고 가을 강에 배를 띄워 심양으로 향하는 그림이고, 서쪽 벽에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모시러 간 삼고초려의 그림이 붙어있다. 남쪽 벽에는 강태공이 줄 없는 낚시를 드리우고 주 문왕을 기다리고 있는 그림이, 북쪽 벽에는 구운몽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돌다리 위에서 팔선녀를 만나 수작하는 그림이 걸렸다."(춘향전 중)
춘향의 집에 걸린 그림은 당시 서민에게 큰 인기를 끌던 것들로, 지금 우리가 민화라 부르는 그림이다. 당시 백성의 생활을 묘사한 소설과 판소리에는 언제나 민화가 등장한다. 그 묘사들을 종합해보면 조선 후기에 이미 다양한 민화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그려지고 보급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민화는 회갑연, 돌잔치, 결혼식, 초상사진의 배경으로 즐겨 사용된다.
지금 롯데갤러리에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민화전 '민화에 홀리다-서공임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민화 작가 서공임씨가 그린 민화는 전통 민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강렬한 전통 색감을 바탕으로 현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민화에 깃든 수복강녕의 기원은 계승하되 제목도 요즘식으로 바꾼 것이 재미있다.
'전도양양한 나의 인생이 보인다'는 살구꽃에 제비가 나는 그림인 '행림춘연'을 현대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제비는 연희와 장수를 의미하는 새였다. 또 살구꽃은 급제화로 통했다.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민화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볼 수 있다.
모란, 목련, 해당화를 함께 그린 '옥당부귀'는 '재화만발'로 재탄생했다. 모란은 부귀를 의미하는 꽃으로, 옥당부귀는 모두가 선망하는 높은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그림이다. 목련은 옥란화로도 불렸는데 여기서 '옥'은 한림원을 운치 있게 부르는 말인 '옥당'과 같은 글자를 쓴다. 한림원에서 일하는 지체 높은 신분이 돼 부귀와 공명을 한꺼번에 성취하라는 뜻이다.
돌 옆에 국화, 호랑나비, 고양이를 배치해 무병장수를 기원한 그림 '수거모질'에는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제목이 붙었다. 돌은 그 무게만큼 긴 인생을 뜻한다. 국화는 길상의 꽃으로, 여든 살이 돼서도 돌처럼 단단하게 살라는 헌사를 의미한다.
서 작가는 "전통 민화가라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다"고 말한다. "뭔가 새롭고 다른 민화를 하려고 했어요. 원래의 그림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재료를 바꿔 또 다른 느낌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전통 민화에서 벗어난 저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전시는 롯데갤러리에서 23일까지, 에비뉴엘에서는 4월 21일까지 열린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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