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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독일인이 샅샅이 답사해 엮은 한반도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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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독일인이 샅샅이 답사해 엮은 한반도 지리지

입력
2014.03.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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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地誌)의 대가'로 꼽히는 독일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흐(1186~1971)가 1945년 독일에서 출간한 한반도 지리지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조선에 와서 8개월 간 네 번에 걸쳐 전국을 샅샅이 답사하고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서 완성했다. 백두산과 제주도, 울릉도를 포함해 전체 여행 거리가 1만5,000㎞에 달한다. 1,600㎞는 걸어서, 나머지는 자동차 열차 배로 다녔다. 국내에서는 소수의 지리학자들만 알고 있던 책인데, 세 명의 지리학자가 공동 번역했다.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통합한 전문적 학술서다. 1부는 한반도 지리와 역사에 대한 개관, 2부는 각론이다. 지질 지형 기후 식생 동물지리 인종 의복 건축 종교 민속 농업 산업 교통을 망라했다. 3부는 지역별 고찰이다. 행정구역이 아닌 지리적 특성에 따라 한반도를 16개 지역으로 나눠 상술한다. 마지막 4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조선에 미친 지리적 영향을 분석하는데, 인구와 산업부터 도시와 마을 구조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이 책에는 지도와 통계, 사진이 많다. 당시의 한반도 지형, 지역별 강수량과 인구 분포, 문화지리를 보여주는 컬러지도 4매는 본문 뒤에 따로 붙어 있다.

라우텐자흐가 조선에 온 것은 포르투갈 지지 연구서를 쓰고 나서 같은 위도에 있는 동쪽 끝 나라의 지지를 비교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구 여행에서 그는 조선의 주요 식물 100여 종을 채집한 다음 서울의 임업시험장에서 바로 확인해 완벽한 식물 목록을 만들었다. 광물과 암석 표본, 답사 지역의 사진, 지형도와 지질도, 일본 서적 수백 권도 독일로 가져갔고 이를 토대로 책을 썼다.

당시 한국은 서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관련 자료라곤 서양인이 쓴 피상적인 여행기거나, 학술적 연구라 해도 일본이 한국 지배에 필요한 기초 연구로 해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기존 문헌의 이런 한계를 지적하면서 "옛 자료와 최근 자료를 종합하고, 동시에 경험적 관찰에 근거해서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지리학적 연구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한국은 "상세한 지리적 연구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강한 개성을 지닌 국가"였다.

이 책이 다룬 영역의 방대함은 저자가 밝힌 참고문헌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정기간행물과 사전류, 지도를 뺀 단행본과 논문만도 936종이다.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 등 서구 언어나 일본어로 된 것들이다. 극소수지만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등 한국 고서의 번역본도 포함돼 있다.

학술서지만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하진 않다. 문학적 표현은 없지만 충분히 감흥을 일으킨다. 1930년대 한반도 지리의 타임캡슐을 여는 즐거움이 있다. 예컨대 개마고원의 식물 군락과 화전 경작 등 북한 지역에 관한 서술은, 지금 남한 사람은 갈 수 없고 가서 보더라도 사라졌거나 크게 달라졌을 내용이다.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이 책에 잔뜩 등장하는 식물의 학명과 암석 분류를 하나하나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김종규 경희대 교수는 번역자를 대표해서 쓴 서문에서 "현 시점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정확히 80년 전에 우리나라가 제 3자인 서양인에게 어떻게 보였느냐 하는 점"이라고 강조하면서 "책 내용이 저자의 1933년 여행과 1945년 이전의 참고문헌과 통계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지리적 측면에서 우리의 과거를 복원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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