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등장하는 유명배우를 열거하기만 해도 숨차다. 레이프 파인스가 출연하고 주드 로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영화계 샛별 레아 세이두와 '설국열차'로 낯 익은 틸다 스윈튼도 보인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마데우스'(1984)에서 질투에 사로잡힌 살리에리를 연기했던 F. 머레이 에이브러햄과 '피아니스트'(2002)로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고발했던 에이드리언 브로디, '쥬라기 공원' 시리즈로 유명한 제프 골드브럼도 있다. 윌렘 데포와 에드워드 노튼, 빌 머리, 마티유 아말릭, 하비 케이틀, 시얼샤 로넌도 출연진을 구성한다. 영화 대여섯 편은 너끈히 만들만한 배우들이 한 영화에 모두 모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배우들의 면면만으로도 포만감을 전하는 영화다.
배우 하나하나가 강렬한 인상과 묵직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유명 배우들은 각각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가 돼 서로 맞물리며 감독 의도대로 빈틈없이 움직인다. 명품 수공예품처럼 만들어진 장면 하나하나에는 감독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꼼꼼함을 넘어 집요함이 엿보이는 화면들은 근사한 그림이나 다름없다.
가상의 동유럽 국가 주브로브카가 주요 배경이다. 호화 호텔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지배인 구스타브(레이프 파인스)와 그의 총애를 받는 어린 로비 보이 제로(토니 레볼로리)가 겪는 일대 모험이 극을 이끈다. 이 호텔의 주 고객이자 구스타브의 연인인 마담 D(틸다 스윈튼)가 의문 속에 세상을 떠나며 이야기는 탄력을 받는다. 구스타브는 세계적 부호인 마담 D의 유언으로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받게 된다. 어머니의 유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마담 D의 망나니 아들 드미트리(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드미트리는 구스타브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우는 한편 그림을 되찾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 경쾌한데 심장을 죄는 서스펜스와 아찔한 액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제로와 빵집 소녀 아가사(시얼샤 로넌)의 청순한 사랑이 토핑처럼 얹히기도 한다. 강렬하면서도 달콤하고 유쾌하면서도 쓸쓸한 영화다.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다종한 감정으로 100분을 장식하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정서는 잃어버린 한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다. 1920년대 유럽 사회에 대한 송가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당대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섬세한 세공술로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하려 했다.
관객들의 눈이 호사를 누릴만한, 영화학도라면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그림 같은 명 장면'이 즐비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외관과 이 호텔을 둘러싼 풍광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영화 속 각각의 시대배경에 맞춰 당대의 화면 비율로 스크린에 투영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지난달 열렸던 제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이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수상했다. '로얄 테넌바움'(2001)과 '다즐링 주식회사'(2007), '문라이즈 킹덤'(2012) 등으로 국내 시네필의 사랑을 받아온 앤더슨 감독의 일보 전진한 영상미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2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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