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하게 기억하는데, 돌아가신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은 내 면전에서 몇 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문학은, 받아 적는 것이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지만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 받는 파블로 네루다도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최인호 선생님과 네루다의 말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문학이란, 자기의 의도나 의사와는 무관하게 창졸간에 주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의 어떤 성취란 내가 그걸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내 몸에서 문학적인 의도나 욕망을 배제할 때, 다시 말해 어깨에서 문학적인 포즈나 힘을 다 뺄 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것. 부를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부르지 않을 때 살금살금 다가오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나는 좋은 시인이나 작가들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단련되는지를 '황태'에 비유해서 설명해보고 싶다. 밤사이 눈을 맞으며 매운 해풍에 얼었다가 낮이 오면 햇살에 녹기를 수백 번 반복하면서 완성되는 황태처럼 시인이나 작가도 '문학적' 긴장과 '비문학적' 이완 사이에서 수천, 수만 번 의식의 교란을 경험하면서야 어렴풋이, 그리고 겨우 문학의 실마리를 잡아볼 수 있다는 것. 그러다가 어떤 경지에 오르게 되면, 버튼을 누르듯 쉽게 문학적인 모드와 비문학적인 모드를 경계 없이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사품이나 짝퉁은 어디에나 있겠지만.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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