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image)의 어원은 이마고(imago)로 귀신이라는 뜻이다. 죽은 이의 얼굴을 밀랍으로 떠낸 것을 이르는 이마고는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처럼 사용되거나 마당에 있는 창고 선반에 비밀스럽게 모셔지곤 했다. 형상을 뜻하는 피구라(figura)의 원래 뜻도 귀신이다. 우상(idol)은 에이돌론(eidolon), 즉 죽은 자의 망령이나 유령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이 음산한 어원들이 한결같이 증거하는 바는 무엇일까.
"애초에 이미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출발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에서 미술의 핵심 원동력 중 하나로 죽음을 지목한다. 네안데르탈인들이 무덤 주변에 뿌린 꽃부터 최초의 미술 작품인 이집트의 미라까지,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불멸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미술을 집중 조명했다.
"잔인한 시간의 승리 앞에 사라져 버린 모든 것들을 안쓰럽게 추억하고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이미지는 필요했다…인간은 죽음의 파괴에 이미지라는 재생으로 맞선다." 책은 죽음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한 한국 현대미술 작가 71명의 작품 98점을 소개하고 있다. 시신, 무덤, 자살, 제사, 국가권력에 의한 죽음, 사회적 죽음 등 여러 양태의 죽음 앞에서 어떤 이는 네안데르탈인처럼 꽃을 뿌려 은폐하고 또 어떤 이는 미라에 붕대를 감 듯 전면으로 저항한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노순택 작가에게 죽음이란, 기억에 대한 집착과 망각의 위험이 대치하는 현장이었다. 그가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실인 망월동 무덤가를 찾아가 촬영한 '망각기계 Ⅱ-01'은 상복 입은 여인이 무덤에 엎드린 모습을 담고 있다. 5ㆍ18때 자식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여인은 무덤을 쓸어 안으며 통곡하고 그 주변에는 여인의 모습을 찍기 위해 모여든 사진 기자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취재 열기는 역설적으로 '오월의 그날' 위에 드리워진 망각의 위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작품 발표 당시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저는 '기억해야 한다' 거나 '망각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들을 기억하고 망각하는 오늘의 우리와 마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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