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감사의 파격행보"은행장 결재 사전 감사" 정기 인사에 제동까지 걸어하나금융 이사회의 반기실적부진 등 이유 윤용로 행장 연임 저지일각선 "총대 멨다"우리금융·LIG손보도 매각 방식·대표 선임 충돌
요즘 금융권에 사외이사와 감사들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거수기나 예스맨 정도로 치부됐던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등 확연한 변화가 감지된다. 금융권에서는 그 배경을 두고 분분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5일 금융계에 따르면 하나금융 내부에서는 최근 경영발전보상위원회(경발위)가 차기 외환은행장에 김한조 외환캐피탈 사장을 내정한 것을 두고 "사외이사들의 반란"이라는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경발위 구성은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과 3명의 사외이사. 하나금융 한 관계자는 "당초 윤용로 현 행장의 연임이 유력했지만, 사외이사들이 실적 부진과 통합 지원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를 했다"고 말한다. 실제 윤 행장은 후보 면접 통보를 불과 30분 전에서야 받고 면접에 불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총대를 메긴 했지만 그 뒤에는 김 회장 등 하나금융 경영진의 의중이 담겨 있었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결국엔 사외이사들이 방패막이가 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한 사외이사도 "김 회장도 경발위 위원이었고, 김 회장이 꾸리고 갈 인물을 우리가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KB국민은행에서는 감사의 파격 행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상임감사위원으로 취임한 정병기 감사는 은행의 정기인사에 제동을 걸며 인사시스템 감사에 나서며 노조와 갈등을 빚은 데 이어 이번에는 은행장의 모든 결재 서류를 사전 감사하겠다고 나섰다. 일반적으로 시중은행 감사 업무지침은 주요 업무에 대해서만 사전 감사를 하고 있지만, 모든 결재 서류에 대해 행장 결재 전에 감사의 검토 의견을 첨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감사들이 좀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 감사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은행 측은 "은행장과의 합의를 통해 새 제도를 시행하는 것일 뿐, 정 감사의 돌출적인 행동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감사를 통해 KB금융측과 은행 경영진간 갈등이 표출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 사건이 끊이질 않으면서 금융지주 측이 감사를 통해 견제에 나서는 것으로 볼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역시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우리금융 민영화를 놓고 이사회가 막강 파워를 과시하는 중이다.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 방식을 놓고 금융당국과 충돌을 빚었고, 경남ㆍ광주은행 매각을 놓고선 아예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인세 등 6,500억원을 감면해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밖에 LIG손해보험 사외이사들는 지난해 4월 당시 김우진 부회장을 새 대표로 선임하려는 경영진의 뜻을 꺾으며 대표 선임안 자체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시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금융지주사들의 사외이사 대거 물갈이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 이들의 반란이 결국 경영진의 의중과 정면 배치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윤지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전문경영인이 자리잡고 있는 금융권은 보장된 임기 내 조직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친분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관행이 되풀이 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