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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농담 나쁜 농담 따로 있다

입력
2014.03.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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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애가 되고 싶었다. 부단히 시도했다. 시답잖은 언어유희, 현실에서 인터넷 용어 사용하기,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 남들은 속으로만 생각할 말을 수면 위로 꺼내기 등…. 그래서 의 인터뷰 코너 이름을 '잉터뷰'로 정했고, 듣고 싶은 말을 정해놓고 답답한 소리 하는 사람에게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넌 말해)세요?"라고 받아쳤으며, 혼자만 말을 길게 하는 아저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기색이 보이자 하품을 하며 "혓바닥이 기시네요."라고 말했다. 웃음이 터진 사람도 있었지만, 내 멱살을 잡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웃기겠다는 의지가'과잉'되면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그중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태도, 기존의 편견을 강화시키는 사고, 패륜적인 농담은 최악이다. 소수의 사람이 모인 편한 자리에서 그러는 것도 불편한데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인터넷 공간, 심지어 지상파 방송에서 그런 농담들을 접할 때는 크게 화가 난다. '일베' 유저들이 낄낄거리며 만들어낸 글과 합성사진들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 '된장녀', '김치녀'라는 용어를 만들어내 한국 음식도 까고 한국여성 전반을 비하하는 문화는 십 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다수가 정한 미의식에 부합하지 않은 여성의 외모를 가지고 농담하는 건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다. 최근 시청자들에게 배불리 욕먹고 광속으로 사라진 코너 SBS '초사랑'에서는 재일교포 4세의 어눌한 한국어 사용을 비하하고, 파이터라는 직업을 가졌으면 가정에서도 폭력적일 거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를 희화화했다. 웃기겠다고 아무거나 막 던지면 안 된다. 원칙은 있어야 한다.

그동안 행했던 여러 시도와 반면교사를 통해 좋은 농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좋은 농담은 아예 멍청하고 엉뚱하거나(그래서 악의라고는 1g도 느껴지지 않거나). 아니면 기존에 다지고 있던 잘못된 편견이나 통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달간 온라인에서는 '연애에 서툰 복학생'(이하 '연서복')이라는 대상에 대한 농담과 패러디가 유행했는데, 나는 이게 좋은 농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여성은 '김치녀' '된장녀'와 같은 언어를 통해 혐오와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같은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해도 젊은 여성이 하는 행동만 수면 위로 건져 올려 물고 뜯었다. 자국의 젊은 여성을 혐오하는 동시에 욕망하는 남성들, 특히 군대에서 대학교로 막 복학해 어떻게든 여자를 사귀어보려고 '뻐꾸기'를 날리는 남학생들은 그런 멘탈리티를 자신의 작업 대상에서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된다. (자세한 건 twitter.com/yonseobok에서 살펴보시길.) 이들의 모순된 언행에 대해 풍자하고 패러디하는 것은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일부 남성들의 동참으로까지 나아갔다. 연서복에 대한 농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여기에 혐오의 정서가 옅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능도 있을 것 같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통념과 뭘 모르고 행했던 '흑역사'에 대해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들이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 다짐하길 기대한다. 이런 경험들이 모이면 사회 전반적 의식이 개선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성이나 젠더를 기반에 둔 억압뿐만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억압의 기제가 많다. 나이, 출신 지역, 외모, 학력 등에 대한 편견과 그 편견을 기반에 둔 억압들. 나는 이에 반항하고 싶다. 대신 웃으면서 하겠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다.

를 만든 것도 농담 같은 반항이었다. '내가 잉여긴 잉여인데, 나 혼자만의 잘못임? 잉여를 만드는 사회 구조는 무시하고 너무 개인 문제로 돌리는 거 아님?' 빡치니까 아예 '잉여'를 이름으로 한 잡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농담 같이 들릴 거란 걸 알고 있다. 내 이런 저항은 계속될 것 같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더 많이 멱살을 잡히려나….

최서윤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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