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국가에 한국이 포함된 것은 한일 간 외교전에서 우리의 개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역대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전례로 볼 때 이런 논란이 야기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재임 중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미국대통령은 1회 이상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이 방한할 때는 일본을 거쳐 오든지, 거쳐서 갔다. 아시아의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늘 패키지 방문 대상이었다. 미중 수교 후로는 미 대통령의 동북아 순방에는 한중일 3국을 차례로 방문하는 게 관례였다.
국제회의 참석과 같은 특수 목적의 방문 때는 개최국 한 나라만 다녀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1차 임기 중에 유례없이 3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 스스로 임기 중 한 나라를 세 번 방문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오바마의 첫 방한은 2009년 11월 취임 후 아시아 순방 때였다. 그는 당시 한국 일본 중국을 방문했다. 2010년 11월 서울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는 참석 후 일본을 들러서 갔다. 2012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담 때는 한국만 방문했다. 재선의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한으로 재임 중 4번 방한하게 됐다. 이후 다시 방한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나 4회만으로도 미 대통령 중 가장 많이 방한한 대통령이 된다.
오바마의 4월 아시아 순방의 당초 목적지는 지난해에 이어 미 정부의 셧다운으로 일정이 취소됐던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였다. 여기에 일본이 끼어들어 2박3일의 국빈방문을 추진함으로써 한일 간에 첨예한 외교적 갈등이 빚어졌다. 한국으로선 미 대통령이 한국을 빼고 일본만 방문하는 것은 매우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을 편드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선 1차 임기 때 일본보다 많이 한국을 방문했고, 올해 중 아시아에서 열리는 3차례의 국제회의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할 계획이어서 그 때 한국을 따로 방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국을 제외했을 수도 있다. 또 중국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만 방문하는 것은 한국 못지않게 중국으로서도 매우 언짢은 일이다. 동맹국인 한국 방문을 제외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 목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중국에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지난달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나 작년 말 조셉 바이든 미 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한일 양국과 중국을 다녀간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이 미중간의 협력관계에 바탕을 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한국을 뺐다가 넣은 것은 한중일 3국에 대해 배려와 견제를 동시에 구사한 절묘한 외교적 카드였다고 본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일제의 침략을 받은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를 비롯 세계 모든 나라가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과 2차 세계대전을 치른 미국은 더욱 그래야 한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미국의 국익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이 아시아에서 왕따 상태로 우경화를 추진하려면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 대해 방위비분담, 미국산 무기구매 등 통 큰 선물을 제시하고 얻어낸 것 중의 하나가 일본 단독의 국빈방문이었다.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단독방문이 한중일 및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에 집중됐고, 결국 주효했다고 평가된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1기 임기 중에 3번이나 방한하면서 돈독해진 한미관계가 손상되는 것도 부담이었을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 문제에 관한 한 중국과 공조할 수밖에 없고, 더욱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연내 방한 계획이 잡혀있어 한중관계는 더 긴밀해지고 한일관계는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정책 전반에 차질을 의미한다. 북한에 던지는 잘못된 메시지도 제거한 효과가 있다. 한국전쟁을 촉발한 '애치슨 선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의 종속변수처럼 비치는 것은 한미의 대북한 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방한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일관계의 조기 정상화와 한중 밀월의 과속방지를 주문할 공산이 크다. 작년 말 방한 때 바이든 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미국에 베팅하라'고 했고, 최근 케리 장관은 '한일관계는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고 했다. 크게 생색을 내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이기에 뭔가 큰 답례를 요구할 것이다. 이런 때 명심할 일이 '과공비례(過恭非禮ㆍ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님)'이다.
임종건 한남대 정치언론국제학과 예우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