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회사 임원 오모(53)씨는 지난해 7월부터 월급을 몽땅 압류당하고 있다. 당숙이 2009년 솔로몬 저축은행에서 받은 대출 19억원에 대해 오씨가 연대보증을 섰는데,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오씨가 그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다. 당숙은 담보 잡힌 부동산을 처분해 원금을 갚았지만 그 동안 쌓인 연체이자에, 연 25%의 금리가 적용된 지연손해금 등 7억원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씨는 악착같이 빚 독촉을 하는 예금보험공사가 야속하다. 예보는 해당 저축은행의 파산으로 오씨 등 부실대출 채권을 넘겨받아 관리하고 있다. 오씨는 "공기업이 사채업자처럼 고리이자에 이자를 물리며 가혹하게 빚 상환에 나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금보험공사가 파산저축은행을 관리하며 과도한 고금리 영업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채무자들은 "공기업이 서민을 저버렸다"고 하소연하지만 예보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예보는 2000년부터 금융기관이 파산하거나 제3의 금융사에 매각된 이후 남은 잔여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산하에 파산재단을 두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이후 파산한 금융사가 급증해 현재 51개 파산재단 중 35개가 저축은행 파산재단이다. 이 재단은 해당 금융기관이 파산절차를 통해 자산이 모두 처분돼 채권자들에 분배될 때까지 운영된다.
문제는 저축은행 파산재단에 남아 있는 고금리 대출자들이다. 가장 큰 재단인 솔로몬 파산재단의 경우 9만여명(1조8,000억원)의 대출자가 남아있다. 예보는 이들 대부분에게 기존 저축은행과 계약했던 연 20%대 고금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현재 저축은행의 대출금리가 10%대 밑으로 떨어졌지만 요지부동이다. 금융당국은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의 기존 대출을 다른 저축은행을 통해 저금리인 햇살론 등의 대출로 전환하도록 허용했으나, 파산 저축은행 대출자는 지역 신용보증재단 보증 중단 등의 문제로 대부분 전환이 이뤄지지 못했다.
예보는 이들에게 온정을 베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공사채를 발행해가며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26조원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예보가 채권발행 등으로 지출하는 연간 이자비용만 5,300여억원에 달한다. 예보 관계자는 "일부 어려운 서민들에게 채무조정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연체 대출금을 조정해줄 뿐 대부분 대출자에게는 기존 계약 내용 그대로 적용해 상환 받고 있다"며 "이미 공적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에 회수율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이 들어간 이상 서민이라고 무작정 대출금을 깎아줄 수는 없다"며 "통합도산법을 개정해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서민들이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절차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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