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올해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종희(29) 변호사는 판ㆍ검사나 로펌 행 등 대신 '공익변호사'를 택했다. 사회적 약자를 변론하고 불합리한 법을 개정하는 활동을 하는 공익변호사는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하지만 돈을 받고 변론을 하는 영리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4일 서울 서대문구 공익 로펌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 사무실에서 만난 이 변호사는 인턴 때의 경험이 그저 성공한 변호사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사법연수원 1학년 때 공익 로펌 '공감'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장애인 난민 이주여성 등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법이 돈 많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약자들을 위해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포부는 크지만 공익변호사의 길이 순탄치는 않다. 이들의 소득은 시민들의 후원에 의지해 월 150만~200만원 수준인데다 안정적이지도 않다. 이런 현실 탓에 국내 공익 로펌과 시민단체에 상근하는 공익변호사 수는 3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변호사가 이 길을 가게 된 데는 사법연수원 43기 동기들의 후원이 큰 힘이 됐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6월 사법연수원 동기 333명이 매달 1만~10만원을 모아 조성한 공익변호사 후원 '파랑기금'의 수혜자다. 수혜자는 기금 운영위원회가 서류, 면접 등을 거쳐 선정한다. 이 변호사는 앞으로 3년간 이 기금에서 월 200만원씩을 지원 받는다.
공익변호사 후원기금은 2011년부터 3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사법연수원의 전통이다. 41기들이 열악한 급여 때문에 공익변호사를 선택하지 못하는 동기들을 후원하기 위해 만든 '낭만펀드'가 '감성펀드' '파랑기금'으로 이어지며 모두 6명의 공익변호사를 배출했다.
이 변호사는 3일 희망법에 출근하며 공익변호사로서 첫 발을 뗐다. 희망법은 2012년 2월 '공익 증진과 인권 옹호'를 기치로 설립돼 이 변호사를 포함, 공익변호사 7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청각장애인을 위해 선거광고 화면에 수화를 넣어달라"고 청원해 성사시키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이 변호사는 "희망법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노동 문제를 중점으로 다룬다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며 "한 순간에 직장에서 잘려 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변론하고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비합리적인 제도를 우선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공익변호사에 관심이 많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며 공익변호사 지원이 활성화 되기를 바랐다. 미국에서는 변호사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로펌과 로스쿨이 출연한 '프로보노 인스티튜트(PBI)'가 공익변호사를 후원한다. 일본 변호사협회는 '해바라기 기금'을 만들어 무변촌(無辯村)에 공익변호사를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지원이 전무하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