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 앉았을 땐 여느 스타나 다름 없었다. 사회자 엘렌 드제너러스가 객석에 피자를 돌리자 솔선수범해 1회용 접시를 나눠주며 쇼맨십을 보여줄 때도 영락 없는 배우였다.
하지만 최우수작품상 발표 때는 달랐다. '노예 12년'이 호명되자 브래드 피트는 무대에 빠르게 올랐다. 그는 트로피를 먼저 손에 쥔 뒤 스티브 매퀸 감독과 어깨동무를 하고 파안대소했다. 마이클 패스벤더 등 다른 배우와 스태프는 뒤에서 축하 박수를 보냈다. 아카데미 작품상 트로피의 실제 주인은 피트였기 때문이다.
피트는 '노예 12년'에 짧게 등장한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을 노예제의 구렁텅이에서 구하는 착한 백인 베스 역할로 힘을 보탰다. 하지만 피트의 주요 업무는 제작이었다. '머니볼'과 '킬링 소프틀리' '월드워Z' 등으로 제작자 길을 걸어온 피트는 '노예 12년'의 작품상 수상으로 연기뿐 아니라 제작에서도 재능을 꽃피우게 됐다.
피트의 작품상 수상은 배우 출신 제작자 전성 시대를 상징한다. 지난해 작품상 수상작 '아르고'의 제작자는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였다. 배우의 제작자 겸업은 할리우드에선 흔하나 배우 출신 제작자의 아카데미상 2년 연속 정복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 출신 제작자로선 멜 깁슨('브레이브 하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용서 받지 못한 자'), 리처드 어텐보로('간디'), 로렌스 올리비에('햄릿') 등 소수만이 작품상 수상이란 꿀맛을 봤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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