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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6인의 소방영웅' 홍제동 화재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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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6인의 소방영웅' 홍제동 화재 참사

입력
2014.03.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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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중략).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내 목숨이 다했을 때 당신의 은총으로 저의 가족과 아내를 지켜주소서(후략)."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는 그곳으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들어갔다.

2001년 3월 4일 새벽, 정적을 깨는 비상벨이 울리자 서울 서부소방서 소속 김철홍 소방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제동 주택가에서 화재 발생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새벽 3시 48분, 몸에 밴 일상으로 현장까지 출동하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황급히 자리를 뜬 김 소방교의 책상 위에는 1958년 미국 캔자스주의 소방관이었던'스모키 린'이 쓴'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글귀가 놓여 있었다. 화재현장에 출동했다가 불길에 갇힌 세 명의 어린이를 구하지 못한 괴로움과 각오가 절절히 녹아있는 시였다.

"1층에 아들이 있어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홍제동 화재현장은 소방차 접근이 어려웠다. 큰길에서 주택에 이르는 이면도로가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80여m의 골목길을 내달린 소방관들이 호스를 짊어지고 시뻘건 불길을 잡기 시작하자 현장에서 탈출한 집주인 선 모씨가 대원들을 붙잡고 애원했다.

정신병을 앓았던 아들 최 모씨는 홧김에 불을 지른 후 이미 집을 나와 행방이 묘연했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대원들은 주저 없이 화마가 넘실대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잠시 후 '우지끈'소리가 나며 천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나와, 빨리 나와! 집이 무너진다!"밖에서 터져 나온 외침도 잠시,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은 소방수의 무게와 불의 위력을 견디지 못한 채 건물 전체가 폭삭 내려앉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새벽 4시 20분, 9명의 소방관 매몰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소방방재본부에 비상이 걸렸고 긴급 투입된 대규모 구조대가 철근과 건물더미에 깔려있던 강남길 소방사 등 3명의 대원을 구조했다.

하지만 김철홍 소방교를 비롯한 6명의 대원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최고선임 박동규 소방장, 학구파 김기석과 꽤 가정적이었던 박상옥 소방교, 현장 베테랑 장석찬과 결혼을 앞둔 박준우 소방사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틀 뒤 열린 합동 영결식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하얀 소복의 유가족들은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고, 6인의 소방영웅 앞에는 붉은색 구조복과 대비를 이룬 하얀 국화꽃이 차곡차곡 쌓였다.

2006년, 서부소방서에서 이름을 바꾼 은평소방서는 희생된 소방관들의 동판조형물을 설치해 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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