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남 국립외교원 유럽아프리카 연구부 교수(러시아, 독립국가연합 지역 연구)
"우크라이나가 유명무실했던 지금의 크림 자치공화국 자치권을 확대한다면 러시아는 국제사회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군사개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크림 자치공화국의 자치권 확대는 미국과 서유럽 등도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인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를 가장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될 수 있습니다."
고재남(59) 국립외교원 유럽아프리카 연구부 교수는 3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책은 크림 자치공화국의 자치권 확대라고 분석했다. 총리마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지금의 크림 자치공화국에 확실한 자치권이 새로 부여될 경우 러시아는 친러 정권이 들어설 것이기에 뭐라 할 수 없고, 서방은 크림지역을 내줘도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력을 모색할 수 있어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고 교수는 "이번 사태는 크림지역에 이미 자국 무장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며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군사개입에 나선다면 서방도 관련 조치를 취하겠지만 확실한 제재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러시아는 크림 자치공화국의 분리독립을 가장 원하지만, 독립이 아니라면 자치권 확대도 받아들일 것"이라며 "서방도 이 부분은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고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가장 악화시킬 요인으로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꼽았다. 친러 성향의 크림지역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성향 무장세력들이 무력 충돌할 경우 러시아가 즉각 군사개입에 나서고 이는 다시 서방의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친러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충돌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 군이 개입할 것으로 본다"며 "자치공화국인 크림지역과 달리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 동부 지역에 러시아 군이 주둔한다면 문제가 매우 복잡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빚어낼 최악의 결과는 신 냉전시대의 도래"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특히 이번 사태에서 정작 우크라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항해 할 수 있는 일은 기존에 맺었던 조약을 파기하거나 러시아의 군사작전에 대응해 군의 전시태세 준비와 예비군 동원령 등을 내리는 게 전부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현재 우크라이나는 냉전시대 당시 핀란드처럼 러시아와 서유럽의 중간지대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이 나온다"면서도 "과도정부를 비롯해 향후 우크라이나 정부들이 이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끝으로 이번 사태가 수백 년간 이어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치ㆍ문화ㆍ역사적 연결고리를 서방이 경제력을 앞세워 단시간에 단절시키려 해 생긴 잡음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레닌이 소비에트연방 수립 당시 '우크라이나가 없는 소비에트 연방은 무의미하다'고 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깊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350년간 하나의 나라였다가 둘로 나뉜 지 20년 남짓한 상황에서 두 나라는 아직도 모든 분야를 공유하고 있다"며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이점 등을 이용하기 위해 두 나라의 공조를 깨려 했고 이를 지켜보던 러시아가 적극 대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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