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달라지고 있다. 자동차 안전업무와 관련, '솜방망이'지적을 받아왔던 국토부는 최근 들어 '저승사자'로 변신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국토부가 서슬퍼런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나라. 절대 규모로만 따진다면 중국시장이 가장 크지만, 자동차산업과 문화의 뿌리가 깊은 미국이야말로 자동차에 관한 한 실질적 세계 최대, 최고의 시장으로 평가 받는다.
이런 미국 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무엇보다 NHTSA(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자동차안전검사 및 교통안전연구를 위해 1970년 설립된 NHTSA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신차충돌시험을 통해 미국시장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안전도를 평가하며, 연비 에어백 브레이크 핸들 등 모든 자동차 성능을 종합적으로 검사한다. 또 소비자들로부터 직접 민원을 받아, 안전테스트를 실시하는데 연간 접수되는 민원건수만 5만건에 육박한다.
자동차업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NHTSA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리콜. 일단 결함이 확인되는 순간, 자동차 업체들은 회수 또는 무상수리를 피할 수 없다. 세계 1위로 승승장구하던 도요타는 지난 2010년 브레이크 장치 결함 등으로 인해 NHTSA로부터 무려 1,400만대에 달하는 리콜명령을 받았고, 이로 인해 결국 세계 3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2012년 미국에서 벌어진 현대차의 연비파문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NHTSA 조사결과를 승복하기 힘들 때도 많지만 도요타처럼 늑장대응을 하다가는 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만큼 NHTSA는 무시무시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토부가 '한국판 NHTSA를 꿈꾼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선 지난달 불거진 싼타페와 코란도스포츠 연비과장 문제. 일단 재조사 쪽으로 결정돼 논란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업계는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동차 연비 문제에 관한 한 국토부가 소비자들의 이의를 받아 들여 행정력을 동원한 첫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달 도요타 캠리에 대한 리콜도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캠리의 시트 열선을 감싼 천이 '불이 붙었을 경우 분당 10㎝ 이상 전파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을 전 세계 교통안전당국을 통틀어 처음으로 찾아냈다. 국토부는 이례적으로 '리콜 예고'를 통보했고, 이에 도요타 본사는 즉각 해당 내장재를 교체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난달 26일 공식 리콜명령을 내렸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국토부가 해외 인터넷 게시판을 보고 수입차 리콜 결정을 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본사에서도 한국 국토부의 변화를 매우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소비자보호 강화추세에 따른 것이다. 자동차 안전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가 소비자단체보다도 못하다' '업계만 감싸는 정부'란 비판이 끊이질 않았던 터라, 특히 안전과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박근혜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국토부 역시 NHTSA의 길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하지만 그 배경엔 고질적 '부처간 밥그릇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자동차 연비의 경우, 종합 정책과 리콜 판단은 국토부의 몫이지만 연비측정은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관리공단에 위임)가 담당하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현재 양 부처간 물밑 힘겨루기가 한창이라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연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자꾸 높아지고 있어 자동차 안전당국으로서 작년부터 연비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에너지관리공단이 지금껏 자동차 연비에 대해 거의 모두 합격판정만 내린 점을 지적하며, 내심 조사 자체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측은 "시험 결과가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으려면 시험기관이 국가표준기본법(KOLAS)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토부는 그런 인증이 없기 때문에 결국 무자격자가 연비를 측정한 셈"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달 산타페 등에 대한 연비조사에서 산업부는 적합 판정을, 국토부는 부적합 판정을 내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안전에 대한 국토부의 엄격한 변신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두 부처로 업무를 일원화하지 않으면 큰 혼선만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이유가 무엇이든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현상"이라며 "그러나 NHTSA 벤치마킹도 좋지만 국내 산업수준에 적합한 모델 개발을 통해 규제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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