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병원을 방문한 40대 초반 여성 이모씨는 폐 CT와 흉부 X선 영상을 찍었다. 촬영이 끝나자 CT와 X선 장비에 각각 0.35, 0.012mSv(밀리시버트)라는 수치가 기록됐다. 영상을 찍는 동안 이만큼의 방사선에 이씨가 피폭됐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상 검사가 점점 늘면서 방사선 피폭량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에 따르면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진단용 방사선 피폭량은 2007년 0.93mSv에서 2011년 1.4mSv로 5년간 약 51%나 늘었다. 하지만 의료용 영상을 찍은 뒤 방사선 피폭량을 일일이 확인하는 환자도, 알려주는 병원도 아직은 드물다.
더 큰 문제는 안전하다거나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의학적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 주변 환경으로부터 받는 연간 피폭량이 1mSv를 넘으면 안 된다는 국내외 기준이 있긴 하나 전문가들은 "의료 분야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고 주장한다. "건강에 도움을 얻기 위한 의도적 행위"로 생긴 피폭이라서다. 영상 촬영으로 병을 예방하고 진단하고 치료하기 때문에 방사선 노출로 얻는 피해보다 이득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ICRP)도 키 170㎝, 몸무게 70㎏인 성인을 기준으로 인체 부위별 방사선 노출 권고량을 정해놓긴 했으나 이를 넘지 말라는 의무는 없다. 방사선량에 상한선이 있으면 암 치료 등이 제한을 받기 때문에 규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병원마다 나오는 방사선량도 천차만별이다. 식약처가 2007~2009년 125개 병원을 대상으로 촬영 부위별 방사선 피폭량을 조사한 결과 흉부 X선은 병원 간 최대 32배까지 차이가 났다. 두부는 28배, 유방 5배, 복부 7배, 골반 22배가 각각 차이가 났고 요추의 경우 37배에 달했다. 두부와 복부 CT는 각각 9배 차이였다. 장비 노후화와 환자 체형, 촬영 방식, 판독 기술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해 나온 결과다. 일반적으로 기기가 오래되거나 성능이 떨어질수록 방사선이 더 나온다. 환자 몸집이 클수록 피폭량도 많다. 같은 기기로 같은 부위를 같은 의료진이 촬영했을 때 환자 체형에 따라 많게는 약 70%까지 피폭량이 차이 난다는 보고도 있다.
영상 촬영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촬영기사가 기기를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방사선 피폭량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서울 시내 종합병원의 한 영상의학과 교수는 "PET-CT를 찍을 때 방사성동위원소를 많이 넣으면 검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환자는 방사선에 더 피폭된다"고 말했다. 촬영된 영상을 판독하는 의사의 성향도 피폭량에 영향을 미친다. "의사가 노이즈(필요 없는 신호) 없이 깨끗한 영상을 봐야겠다고 하면 (촬영기사가)방사선 노출량을 높여 찍기도 한다"고 이 교수는 귀띔했다.
여러 요인이 방사선 피폭량에 영향을 미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알 길이 없다. 얼마나 피폭되면 몸에 어떤 영향이 나타날 수 있는지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방사선에 피폭되면 유전자가 손상된다고는 알려져 있다. 대부분은 24시간 안에 복구되지만, 일부는 손상된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 피폭된 유전자가 공교롭게도 암을 억제하는 부위거나 인체에 불리한 돌연변이로 바뀔 경우 문제가 생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결국 현재로선 환자나 병원이 자발적으로 방사선 피폭량을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검사 중 노출된 방사선량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최신 장비를 도입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차병원그룹의 의료센터 차움은 "환자의 누적 방사선량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방사선이 안 나오는 초음파나 MRI로 대체하는 등 피폭량을 최소 범위로 유지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이런 시스템을 갖춘 병원이 많진 않다. 이 때문에 보건당국은 CT에서 나온 방사선 정보를 환자 개인별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최근 개발했고, 이달 중 병ㆍ의원에 배포할 예정이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쓰겠다는 곳에 한해서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전국 의료기관 약 1,500곳 중 400여 곳만 사용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고령화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영상 검사가 점점 증가하는 만큼 방사선 피폭량 관리를 의무화하는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는 지난해부터 의료용 영상을 판독할 때 의료진이 피폭선량을 기입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핵의학과나 영상의학과 등에선 자칫 환자들이 꼭 필요한 검사를 방사선 피폭 걱정 때문에 거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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