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장남감 레고는 1932년 덴마크에서 시작됐다. 조립식 장난감 레고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어린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특히 지난해에는 엄청난 하락세를 기록했다.
어린이들이 전통적인 장난감 대신에 새로운 전자 완구를 선호하게 된데다 더 저렴한 레고 복제품들이 계속해 유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고가 영화 한 편으로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할리우드 영화 '레고 무비'의 엄청난 흥행 덕분에 전세계 레고 판매율이 상승세를 이어나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레고 무비'가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연속 3주 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았던 레고 블록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23일까지 북미에서 1억8,300만달러(약 1,955억원)를 벌어들였다. 영화의 인기는 북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에서도 '레고 무비'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16일까지 집계된 바로는 2,188만파운드(약 390억원)를 벌어들였다. 영화는 벌써 2017년 속편 제작을 예약했다.
'레고 무비'의 박스 오피스에서의 엄청난 성공은 단순히 이 영화가 어린 관객들만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레고 무비'는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어른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의 좋은 사례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답게 단순하다. 평범한 공사장 인부의 삶을 살던 에밋은 우연히 와일드 스타일을 만나면서 새로운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지시 아래 두려 하고 사람들을 천편일률적인 삶에 가둬두려는 로드 비즈니스에 맞서 여러 동료들과 함께 11개의 세계를 여행하며 혁명을 일으킨다. 착하고 긍정적이지만 누구보다 평범한 에밋이 갑자기 영웅이 되어 여러 동료들과 힘을 합쳐 악과 싸워 나간다는 플롯은 여덟 살짜리도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웅 영화의 공식이다.
화려한 3D, 컴퓨터그래픽(CG) 프로그램을 사용해 마치 실제 레고 블록으로 영화를 찍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스톡 모션 기법 등 화려한 화면이 매력적이다. 외국의 많은 평론가들은 "할리우드의 기술력의 정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어공주, 외계인 베니와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 배트맨, 슈퍼맨, 해리포터, 그리고 미켈란젤로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은 캐릭터들이 총 출동해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만 맞춘 영화는 아니다. 미국의 여러 영화 평론가들은 어른들에게 재미와 더불어 생각해 볼 거리도 주는 영화라고 평가한다. '레고 무비'에는 어른들이 재미있어 할 패러디가 가득하다. 배트맨이나 슈퍼맨 등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취하는 것은 근래 할리우드의 주류로 자리 잡은 슈퍼 히어로 장르에 대한 비판이다. 자동차 추격전과 과장된 폭발 장면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관습적인 행태에 대한 조롱으로 볼 수 있다. 성인들을 위한 유머도 빼놓을 수 없다. 고전 명작 액소시스트를 연상 시키는 360도 돌아가는 우디의 머리와 같은 패러디 장면은 아이들이 사심 없이 웃을 수 있는 장면인 동시에 어른들을 겨냥한 유머다. 이렇듯 어른과 어린아이를 둘 다 포섭할 수 있는 유머 감각이 '레고 무비'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된다고 텔레그래프와 시카고트리뷴 등 영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끝부분에 전개되는 반전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는 하나의 중요하지만 단순한 교훈을 전한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머리로 창조해야 한다"라는 말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는 아빠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영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레고 무비'가 한국에서는 이렇다 할만한 반응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레고 무비'는 지난 6일 개봉해 지금껏 겨우 20만명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와 극장인 CGV, 롯데시네마 등이 이익을 나누는 부율의 문제로 갈등을 보이고 있어 서울의 주요 멀티플렉스에 상영되지 못한 탓이 크다.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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