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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엔 정직함과 포용정신이 담겨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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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엔 정직함과 포용정신이 담겨있죠"

입력
2014.02.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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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라는 정직함과 외모를 차별하지 않는 포용성이라는 당시 시대 정신을 잘 담고 있습니다."

50여 년 동안 의학자의 길을 걸어온 노 교수가 최근 의학 분야가 아닌 미술사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이성낙(76) 가천대 명예총장. 이 총장은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 논문으로 명지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8일 서울 종로구 사건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 총장은 "초상화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독일 뮌헨 의대 유학시절 주임교수였던 알프레드 마르치오니니(1899~1965)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였다"고 회고했다. 의술과 예술을 접목한 '미술품에 나타난 피부 질환'이라는 주제의 마르치오니니 교수 강의는 결국 내과를 지망했던 이 총장을 피부과로 이끌었다. 이 총장은 "마르치오니니 교수의 색다른 강의를 들으며 예술을 저런 시각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우쳤다"고 설명했다.

1975년 귀국 후 이 총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가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양 인물화에 비해 '리얼리티'가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사실성이 뛰어난 조선시대 초상화에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 총장은 "어떤 초상화를 보면 황달을 넘어 흑달로 죽음을 앞둔 모습이 담겨 있고 또 다른 초상화는 곰보로 뒤덮인 얼굴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며 "바로 이런 점이 중국이나 일본 초상화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색이다"고 말했다.

이후 이 총장은 전국 박물관과 미술관은 물론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나 불교 사찰까지 이 잡듯 뒤지며 초상화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 논문에는 이 총장이 40여년간 발품을 판 결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총장이 분석한 조선 초상화 519점을 보면 다모증(多毛症)과 백반증(白斑症) 등 각기 다른 20가지 피부 증상이 발견됐다. 특히 14%에서 천연두 반흔(흉터)이 나타나 조선시대에 천연두가 얼마나 창궐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총장은 초상화를 통해 조선시대 피부병을 분석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초상화에 담긴 당시 시대정신까지 발굴해냈다. 이 총장은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면 당시 선비사회에는 정직함과 포용성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1872년 그려진 태조의 어진(御眞)이다. 이마 부위에 사마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조선을 개국한 왕의 초상화에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그린다는 원칙이 예외 없이 적용된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마지막 어진 화가 채용신이 1911년 사시(斜視)도 그대로 그린 '황현 초상화'에 까지 이어진다. 이 총장은 초상화에 나타난 일종의 '외모 장애자'들이 대부분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사실에서 조선 선비사회의 포용성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조선시대 승정원일기가 왕실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기록한 황실 기록물이라고 한다면 초상화는 그에 버금가는 문인 사대부들의 기록문화라고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요즘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남의 논문을 표절하는 등 이런 정직함과 포용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 총장은 앞으로 연구결과를 책으로 내 조선시대의 건전한 시대정신을 일반인들에게도 알리는 한편 번역 등을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세계에도 알릴 계획이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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