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자치공화국의 긴박한 상황과 겹쳐지는 장면이 있다. 6년 전 역시 흑해를 끼고 있는 옛소련 연방국 그루지야(현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남오세티야 전쟁'이다.
그루지야 북부 러시아에 인접한 남오세티야 역시 우크라나이 크림반도처럼 자치가 보장되는 친러시아 지역이다. 1992년에 그루지야와 한차례 분쟁을 겪은 남오세티야는 이후 평화유지군으로 그루지야군과 러시아군 등 500명이 주둔한 상태로 사실상 자치를 유지해왔다.
남오세티야는 주민의 3분의 2가 러시아여권을 가졌고 러시아와 무역 등을 통해 경제가 굴러가는 곳이다.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오세티야인들이 그루지야인들과 갈등을 빚으며 민족자결권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긴장이 고조된 것은 옛소련 분리독립국 최초의 시민혁명인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을 이끌었던 사카시빌리 대통령이 친미성향을 노골화하면서부터다. 사카시빌리는 2004년 집권 후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는가 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등 행보를 취했다.
기존의 민족 갈등에 겹쳐 이 같은 러시아와 거리두기에 반발해 남오세티야 주민들 사이에서 분리독립 요구가 높아져갔다. 이를 다잡기 위해 2008년 8월 7일 그루지야군이 남오세티야 수도 츠힌빌리에서 군사작전을 개시하자 기다렸다는 듯 러시아가 다음 날 전차를 앞세운 지상군으로 남오세티야를 공격했다.
당시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개전의 이유로 "남오세티야내 러시아 국적의 민간인 보호"를 내세웠다. 화력에서 월등하게 앞선 러시아는 침공 하루만에 츠힌빌리에서 그루지야군을 완전히 제압하고 그루지야 전역에 전투기 공습을 시작했다. 러시아군이 일사천리로 밀고 들어가 불과 닷새만에 그루지야 영토의 절반을 점령하자, 그루지야가 손을 들어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미국과 나토는 당시에도 러시아에 군사 개입을 말도록 경고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위험수위를 확대하는 것이므로 즉각 폭격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군사 대응에 나서지는 않았다. 확전의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전쟁을 앞두고 러시아가 남오세티야 주민에게 대거 자국 여권을 발급한 것도 지금 크림반도와 닮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국방력이 탄탄한데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견제가 강해 러시아가 2008년 때처럼 과감히 개입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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