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의 실형 확정 판결에 대해 법조계는 "중형 선고는 피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자 법원이 다시 재벌 봐주기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300억원 이상 배임ㆍ횡령은 징역 4년 이상이라는 대법원 양형기준에 비춰볼 때 오히려 김 회장에 대한 선고를 예외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많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의 범죄가 기업 경영과는 관계없는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번 선고는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유용한 행위 등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최 회장 형제가 허황되고 탐욕스러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SK그룹 계열사 자금을 동원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2012년 전국형사법관 포럼 이후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일반인보다) 양형을 불리하게 받는 것에 동의할 수 없듯이, 같은 이유로 총수의 형사 책임을 경감해 주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원칙이 사법부 전반에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SK측은 김 회장의 경우처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사실관계 등을 다시 한 번 다퉈 볼 기회가 오기를 내심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항소심 선고 전날 대만에서 송환됐는데도 추가 심리 없이 선고한 것이 위법하다는 주장이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원심이 확정한 450억원의 횡령액을 변동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화측이 제시한 추가 자료 등을 근거로 배임액을 재산정할 필요성을 인정해 파기환송한 김 회장의 경우와 달리, 최 회장 형제의 범죄에는 사실관계를 다시 다툴 만한 오류가 없었다는 얘기다.
같은 재벌 총수의 비리지만 두 사건의 형량 격차가 큰 것은 법원이 범죄의 목적을 달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김 회장처럼) 그룹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명목도 없이 벌인 (최 회장 형제의) 개인 범죄에 대해서는 '대기업 총수'라는 프리미엄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김 회장의 혐의에 대해서도 더 엄한 처벌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횡령ㆍ배임 피해액보다 많은 돈을 변제하고 반성의 뜻을 밝히는 등 감경 사유가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최 회장 형제는 상고심에서도 "김 전 고문이 범죄의 사실상 주체였다"며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 회장 형제 측의 오락가락 변론 전략이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형제는 검찰 수사와 1ㆍ2심 재판을 거치며 수 차례 말을 바꿨고, 김앤장 법률사무소과 법무법인 태평양ㆍ지평 등 변호인단도 앞뒤가 맞지 않는 변론을 해 재판부의 불신만 샀다. 이 때문에 항소심 재판부는 선고 당시 "법보다 자신들이 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등 질책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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