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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섞어라, 마셔라 1

입력
2014.02.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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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2→21→20→19.5→18. 이게 뭔가? 소주 알코올 도수의 참담한 하락 추이를 보여주는 숫자다. 1998년에 23도로 낮아진 알코올 도수는 2001 2005 2006년에 1도씩 계속 낮아지더니 2007년에는 결국 ‘마지노선’ 20도가 무너져 19.5도로 0.5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7년 만인 2014년 2월 급기야 18도짜리가 나왔다.

롯데주류가 알코올 도수를 19도에서 18도로 낮춘 새 ‘처음처럼’을 내놓은 것은 열흘 전인 17일이다. 도수가 낮아졌으니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좌우간 새 ‘처음처럼’이다. 롯데주류에는 '처음처럼 쿨'이라는 16.8도짜리도 있다.

21도 소주가 주류였던 2006년에 20도로 부드러운 소주 시대를 연 ‘처음처럼’은 2007년 도수를 19.5도로 낮춘 바 있고, 2012년 6월 ‘처음처럼’ 제품 3종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알코올 도수를 19도로 더 내렸다.

새 ‘처음처럼’이 나온 지 1주일 만인 24일 하이트진로도 결국 19도에서 18.5도로 0.5도 낮춘 새 ‘참이슬’을 내놓았다. 새 참이슬에는 전통 상표인 두꺼비와 함께 청정함을 강조하는 달팽이가 그려져 있다.

하이트진로의 특이한 점은 술의 알코올 도수가 각각이라는 점이다. 부산 경남지역에는 16.9도인 ‘쏘달’, 대구 경북지역에는 18.0도인 ‘참이슬 네이처’를 내놓고 있다. 그런가하면 고유의 정통 소주 맛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위한 20.1도짜리 참이슬 클래식, 중·장년 술꾼들을 위한 25도 ‘진로골드’ 등 제품이 다양하다. ‘쏘달’은 쏘주가 달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1924년에 설립된 ㈜진로의 전신 진천양조상회가 35도짜리 증류식 소주를 내놓은 게 계기였다. 이때부터 소주는 ‘서민의 술’로 자리를 잡으면서 국민들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2014년은 소주 등장 90년을 맞은 민족사적으로 중요한 해다.

알코올 도수가 처음 낮아진 것은 41년이 지난 1965년. 이때 종전보다 5도 낮은 30도 희석식 소주가 나왔다. 8년 후인 1973년에 5도를 더 낮춘 25도 소주가 나왔고, 이때부터 ‘국민 술’ 소주라면 25도라는 생각이 정착됐다.

이렇게 난공불락의 철옹성처럼 요지부동일 것 같던 소주는 25년, 흔히 하는 말로 4반세기 만에 23도로 낮아지더니 스키 활강하듯 알코올 도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 번 내려간 것은 다시 올라가기 어렵다. 리프트도 없다.

얼마나 더 내려가려나? 도수를 자꾸 낮추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빨리 변하는 데다 순한 술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부드러운 소주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진로를 ‘진노’라고 발음하는 나이든 술꾼들에게는 가당찮은 일이겠지만.

그런데 도수를 낮추는 게 실제로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 초장에 반짝하는 효과는 있지만, 길게 보면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약한 술을 내놓으면서 흔들어 마시라는 등 갖가지 판매전략을 구사하는가 보다.

요즘은 섞어서 마시는 게 대세다. 사실 뭐든 섞으면 맛이 있지만 배속에 들어가면 다 섞인다. 흔들어 마실 것도 없고 마시고 나서 흔들어도 되는데, 한국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섞느라 정신이 없다. ‘부어라 마셔라’가 아니라 ‘섞어라 마셔라’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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