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 추진될 주요 경제청사진을 담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발표 당일까지도 확정이 안돼 허둥대는 장면을 노출했다. 심지어 발표 직전 배포된 자료와 박 대통령의 담화내용이 엇갈리면서 2개월간 전 부처가 매달려 온 정책 상당수는 폐기됐고, 이로 인해 시장에 상당한 혼선이 빚어졌다.
정부는 25일 박 대통령의 담화를 통해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경제 ▲내수ㆍ수출 균형경제를 3대 축으로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1월 6일)에서 구상을 밝힌 지 50일 만이다. 벤처 지원, 규제총량제도, 상가 권리금 보호제도 도입 등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에서 방향은 잘 잡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당초 100대 과제에서 25개 실행과제로 축소되면서 구조개혁 의지는 사라지고, 내용도 뒤죽박죽 됐다.
공공기관 개혁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정보공개 확대, 구분회계, 공사채 발행 총량제도 등 공공기관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지만 낙하산 방지대책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 내용을 그대로 읽으면서도 '5년 이상 관련 업무경력 계량화해 공공기관 임원 자격기준 마련'이라는 핵심을 빠뜨린 것이다. 또 경제민주화,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노사 갈등을 부를만한 사항들은 구체적인 실행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당초 배포한 100대 과제 요약보고서(66페이지)와 이날 나눠준 25개 실행계획 참고자료(46페이지)의 내용, 박 대통령의 담화가 제각각 달라 이른바 '3개년 계획 진본(眞本) 논란'까지 불거졌다. 정부가 전날 배포하기로 한 미공개 상세본(300페이지)도 있다.
예컨대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등 3대 직역연금 개혁은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내년에 재정 재계산을 실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참고자료에는 없던 내용이다. 양날의 검으로 불리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참고자료에 '합리적 개선방안 마련'이란 애매한 설명과 함께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하나로 담겼지만, 박 대통령 담화에선 빠졌다. 코스닥시장을 거래소에서 분리하는 방안은 요약보고서에는 들어있지만 참고자료와 담화에서 빠져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금융시장마저 흔들렸다. 한국관광공사 산하 그랜드코리아레저(세븐럭 카지노)는 매각 방안이 담긴 요약보고서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회사 주가는 한때 상한가까지 올랐다. 하지만 대통령 담화와 참고자료에는 관련 내용이 사라지면서 주가는 급락했고, 이 같은 널뛰기 장세로 인해 피해를 본 투자자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정책의 완결성, 핵심을 담기 위해 정부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3년을 끌어갈 정책이 ▲요약보고서 ▲참고자료 ▲상세본 ▲대통령 담화 등 4개 버전으로 나뉜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심지어 경제부처 공무원조차 "요약보고서는 참고용" "요약보고서 내용은 잊어라" "아직도 조정 중"이라고 헷갈려 하고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100개에서 25개로 줄어든 건 박 대통령의 요구 사항은 아니다"라면서 "워낙 백화점 식이라는 지적이 많았고, 나열식보다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와서 그렇게 바꾸다 보니 일부 가감이 있었을 뿐 큰 틀에서 달라진 건 없다"고 해명했다.
애초부터 3개년 계획 추진 과정은 졸속 우려가 팽배했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1주일 만에 기본 방향을 잡고, 부처별 작성 지침을 하달한 뒤 1월 말에야 정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실행과제가 다듬어진 건 2월 중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4개월이나 공을 들여 만든 여성 경력단절 방지대책도 부족한 게 많다고 지적 받았는데, 2개월은 애초 무리였다"고 털어놓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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