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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25일] 대외적 대내적

입력
2014.02.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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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작년 12월 초순쯤 한 사립 초등학교 대강당에 갔던 적이 있었다. 첫째 아이의 입학 추첨 때문에 찾아간 곳이었다. 경쟁률은 4 대 1. 아이들이 직접 통 속에서 공을 꺼내 입학과 탈락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대강당에 모인 아이들과 학부형들의 숫자만으로도 나는 이미 기가 죽어 버렸는데, 결과는 예상 그대로 탈락. 탈락 공을 뽑아든 아이는, 자신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울먹거렸고, 나는 내심 아쉬웠지만, 그 마음을 숨긴 채, 잘 지어진 건물들과 수영장을 한 번 바라본 후 뒤돌아섰다. 아내는 탈락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애써 나를 위로했다. 아내는 처음부터 사립 초교 입학을 반대했는데, 사실 그건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컸다. 우리가 지원한 사립 초교는 그나마 등록금이 저렴한 편에 속했는데, 분기마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납부해야 했다. 등록금이 그렇고 다른 기타 경비와 이런저런 활동 경비까지 포함하면 분명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갔다. 더군다나 둘째와 셋째 아이까지 입학시킬 생각을 하면 우리 형편으로선 가당치도 않은 일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건립 예정이었던 초등학교가 입학 학생 부족을 이유로 벌써 몇 년째 보류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건립 예정이던 초등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니 걸어서 25분 정도 떨어진, 커다란 도로도 건너고 육교도 한 번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는 곳에 위치한, 여덟 살짜리 아이 혼자 힘으로 걸어다니기엔 좀 버거운, '다른 학교'로 가야 했다. '다른 학교' 사정은 좀 더 심각했는데, 두 곳의 학교가 하나로 통합되다 보니 학급 당 학생 수도 월등히 많았고, 시설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학교'를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아이를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파트 대출금 갚는다는 이유로 학원 한 번 보낸 적 없고 제대로 돌봐준 적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에게 어떤 보상을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사립 초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면, 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또 나름대로의 변명과 자기 방어를 일삼으면서 스스로를 변호하려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사립 초교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을 모두 비난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을 터. 나는 그 사정들과 이유들에 대해서 예전보다 훨씬 더 공감하고 있는 게 맞다. 문제는 나와 같은 사람들, 평상시에는 이런저런 원고나 발언을 통해서 공교육의 정상화를 주장하고, 학벌 문제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비판한 사람들이, 제 경우에는 예외를 두려고 하는 점,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외적으론 진보적인 척하면서 대내적으론 보수적인 사람들. 그 이중적 태도가 우리의 교육 문제를 수십 년째 제자리에 맴돌게 만든 주범이라는 인식이 새삼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비단 교육 문제뿐만이 아니고 정치, 문화, 윤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펼쳐져 있는 모순점이기도 한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개별적으로, 따로따로, 일의 선후를 매기면서 바라본다는 데 그 원인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자유가 가정 내의 변화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했고, 타인의 인권 향상이 가족 내 가부장적인 모순 구조보다 먼저라고 생각한 사람들. 그것이 지난 세월 동안 우리의 변화를 진정한 변화로 이끌지 못한 가장 큰 패착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들은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닌 한 사슬 안에 묶여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변화시킬 수 없다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나와 같은 사람들은 계속 외면해온 것이다.

며칠 전이던가, 첫째 아이는 불쑥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아빠는 왜 맨날 글만 써? 나한텐 읽어주지도 않는 글을?". 아이의 그 말이 이 원고의 시작이 되었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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