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무죄 선고 뒤 강기훈씨는 23년 전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의 유감 표명을 원했다. 같은 날 부산에서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자 담당 검사였던 변호사는 '좌경화된 사법부'를 탓하는 유감 표명을 했다. 그와 달리 강기훈씨 사건 관여 검사들은 어떤 유감 표명도 할 것 같지 않다. 어떤 사건이든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 관여 검사나 경찰로부터 최소한의 사과라도 받아내고 싶지만, 그런 검경은 없고 검경은 도리어 무죄 판결을 내린 법원을 원망한다. 그러나 이번 무죄 판결도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미 다 조작이라고 명명백백하게 밝힌 것을 재심 시작 5년 만에 겨우 판단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질질 끌었는가. 아직도 '6조지'의 하나라는 '끌어서 조지는 것'이 있는가. 강기훈씨는 그 판사나 23년 전 판사들에게 유감 표명을 원했으리라. 물론 판사들도 그런 유감 표명을 한 사례가 없다. 법대로 재판했다고 할 뿐이다. 검경도 법대로 했다고만 한다.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강기훈씨 같은 3년 징역형의 경우가 아닌 사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나마 세상이 바뀌어 재심이 이루어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사법권 남용과 악의적 기소의 대표적인 사례인 예수 재판은 2,000년 간이나 재심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때 이스라엘에서 재심이 청구되었지만 예수를 재판한 로마 제국의 계승국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탈리아라고 하는 이유에서 각하되었다. 최근 국제사법재판소에도 재심이 청구되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각하되었다. 한때는 세계를 지배한 바티칸에서 2,000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 재판의 재심이 있었다는 소식도 없다. 예수나 소크라테스뿐일까.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거나 처형되었는가. 그러나 그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처형한 사람들의 유감 표시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엄청난 국가폭력과 국가범죄가 수없이 행해진 뒤 과거사 청산이니 과거 극복이니 하는 경우에도 판검사들은 용케도 피해간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대체로 그렇다. 나치 치하 판검사들도 극소수의 고위직을 빼고는 마찬가지였다. 처벌은커녕 어떤 유감 표명도 없이 패전 후의 독일에서 판검사들은 그 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도 프랑스를 비롯한 독일 적국에서는 독일 점령 하의 괴뢰정권 판검사에 대해 처벌한 적이 있지만, 그 숫자나 형량도 다른 협력자들에 대한 것과 비교하면 예외적이었다. 그 이유 역시 법대로 했다는 것이었다. 홀로코스트의 수행자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들은 정책과 법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래서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문제다. 바우만이 말했듯이 그들에게는 합리적 처리만이 문제이지 도덕적 처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파괴기계로서 철저히 분화된 그 일부의 기능에 충실했을 뿐 전체를 알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았다. 바우만은 그런 현대의 합리성이 홀로코스트를 낳았고, 따라서 그런 합리성이 지속되는 한 홀로코스트는 끝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얼마든지 지속된다고 경고한다. 그 선구가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강기훈씨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하는데 드레퓌스 재판에서도 판검사들의 유감 표명은 없었다. 게다가 드레퓌스는 첫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면으로 겨우 풀려났다가 다시 재심을 받아 무죄가 되었다. 12년 만이었으니 23년이나 32년보다는 짧았지만. 강기훈씨 사건이 터졌을 때 작가 졸라 같은 사람이 있기는커녕 죽음의 굿판 운운한 시인이나 신부가 있었을 뿐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보다 더 훌륭한 수많은 시민이 강기훈씨를 응원했었다. 그들 모두 강기훈씨의 유죄 판결에도 무죄 판결에도 유감의 눈물을 흘렸다. 판검사 따위가 아니라 시민의 유감 표명에 참된 희망이 있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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