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정은 ‘60년 이산의 벽’을 순식간에 뛰어 넘었다. 23일 이산가족 2차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61년 전 젖먹이 딸과 헤어진 아버지 남궁렬(87)씨는 딸 봉자(61)씨를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아버지 품에 안기며 “저 알아보시겠어요”라고 묻는 딸에게 눈물을 흘리며 “못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색함도 잠시. 남녘에 남겨둔 아내가 5년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딸의 손을 꽉 잡았다. 미안한 마음에 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지만, 딸을 잡은 손에는 힘이 넘쳤다. 함께 나온 북측의 아들 성철(57)씨가 대여섯개 훈장과, 북측 가족들 사진을 보여줄 때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오랜 분단으로 서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제ㆍ자매들의 만남도 이어졌다. 남측 최고령자 이오순(94) 할머니는 상봉장으로 들어오는 북측 동생 조원제(83) 할아버지를 한눈에 알아봤다. 이 할머니는 어릴 적 아버지가 호적 등록을 하지 않아 결혼할 때 다른 사람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씨가 됐다. 이 할머니는 동생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 고맙다”라고 말하며 오열했다. 동생도 “누님, 누님, 우리 누님, 이게 얼마 만이오”라며 눈물지었다. 이 할머니는 6ㆍ25전쟁 때 동생이 죽은 줄 알고 오래 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
북쪽의 리종성(85) 할아버지와 남쪽 동생 종신(74)ㆍ영자(71·여)씨 남매도 얼굴을 보자마자 얼싸안고 목놓아 울었다. 리 할아버지는 제주가 고향인데, 동생들은 죽은 줄 알고 묘비까지 세웠다. 종신 씨는 “형님을 보니 꿈만 같다”며 엎드려 절했고, 영자씨는 “너무 보고 싶었다”는 말을 되뇌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북측 최고령자 김휘영(88) 할아버지를 마주한 남쪽 여동생 종규(80)ㆍ화규(74)ㆍ복규(65) 자매도 오빠를 보자마자, “아이고, 오빠”를 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 할아버지는 ‘나의 살던 고향은’의 가사가 적힌 북쪽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남쪽 가족을 그리워한 세월을 얘기했다.
해외에서 거주하다 가족 상봉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가족들도 눈길을 끌었다. 남편을 따라 성을 바꾼 미국 국적의 김경숙(81ㆍ여) 씨는 오빠 전영의(84)씨를 만났고, 최정수씨도 언니 정애(80)씨를 만나려고 캐나다에서 찾아왔다. 정수씨는 “내가 어려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언니가 적십자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강제로 북으로 가시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기억했다.
이화여대에 다니다 의용군으로 간 북측 김민례(87) 할머니는 이날 북측 아들 기철종씨(60)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나와 남측 조카 5명을 만났다. 김 할머니는 남측의 조카 전혜자씨(80)가 울먹이며 “이모 내 이름이 뭐야”라고 묻자 “전혜자, 혜자야”라며 또렷하게 대답했다.
단체 상봉을 마친 이산가족은 이날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우리측이 마련한 환영 만찬에서도 재회의 정을 나눴다. 상봉 이틀째인 24일에는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이 이어질 예정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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