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사 이옥순(80ㆍ가명)씨는 2007년 자궁암 수술을 받은 뒤 연명 치료를 안 받기로 결심했다. 허리 디스크 등 잦은 병치레를 한 그는 더 이상 죽음이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 17일 "주어진 삶만 살다가 불편한 수의 대신 평상복 걸치고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식들에게 연명치료를 절대 하지 말고 숨을 거둘 때 곁에 있어만 달라고 전했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이들이 맞닥뜨려야 할 결정적인 난관은 죽음을 수긍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감당하는 일이다.
경남 김해에 사는 김동건(71ㆍ가명)씨는 30여년간 교직에 몸 담았다가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지 8년간 숱한 병치레를 겪었다. 한쪽 시력을 잃고, 한쪽 다리를 절어 제대로 걸음을 뗄 수 없다. 2년 전에는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뇌종양 수술을 했고 지난해 말에는 폐암 판정까지 받자 귀향했다. 김씨는 이미 항암치료로 머리 숱이 듬성듬성한 자신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난 설, 그는 중절모를 선물 받았다. 그는 모자 그늘에 아직 털어내지 못했을 슬픔을 감추고 차분히 삶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김씨는 "통증도, 추함도 없이 언젠가 조용하게 잠자듯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죽음을 염두에 두더라도 황혼의 질환에 과하게 위축돼 여생을 보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건열(80) 전 서울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나이가 70대면 70%가 환자고, 80대면 80%가 환자라는 말이 있는 만큼 노인들은 대부분 폐렴 심장병 뇌질환 등 합병증에 걸릴 수 있다"며 "심지어 암도 못 고치는 병이라 생각하지 말고 '관리'하는 병이라 여기는 의식 변화가 있어야 웰다잉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김 전 교수도 관절염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오늘 마지막처럼 살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또 행복하게 살자'며 삶의 의욕을 더 높인다. 늘 죽을 준비는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일찌감치 써두고 유언장을 영정사진에 꽂아뒀다.
'준비하는 죽음'이 웰다잉
웰다잉은 '당하는 죽음이 아닌 준비하는 죽음'이다. 복지관과 종교시설 등에서 진행되는 입관 체험이나 유언장, 엔딩노트 쓰기 등 죽음 관련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은 준비의 일반적이고 또 상징적인 예다.
정재옥(77ㆍ서울 동선동)씨는 매주 한 번 죽음연구 동아리'사(死)는 기쁨'에 6년째 참여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드러누워 못질 소리를 들었다. 박씨는 "깜깜한데 못 소리만 들려 오싹했다"면서도 "누구나 공평하게 겪는 게 죽음이니 연습할 만했다"고 말했다. 이 동아리 회원 30여명은 죽음을 함께 연구ㆍ준비하면서 삶의 기쁨을 추구한다. 입관 체험, 납골당 견학 등 죽음 문화를 접하며 터부시된 죽음에 다가가기도 한다. 회원들은 일시적인 충격요법 체험에 그치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원수를 만들지 않는 법'등 저무는 황혼을 잘 보내는 법을 공유한다.
정현채 서울대 의대 내과 교수는 죽음을 이해하면 그 두려움이 줄고, 삶을 더 충만하게 향유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 교수는 2008년 3주간 폐렴을 앓은 뒤 와인 잔을 들고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준비했다. 그는 임종 직전 비싸지 않으면서 맛과 향이 괜찮은 와인을 마실 거라고 한다. 또 그는 장례 절차도 해양장으로 미리 정해뒀다. 두 딸이 자신이 떠난 뒤 산 중턱에 마련해둔 납골당으로 찾아오기 힘들까 봐 내린 결정이다. 정 교수는 두 딸과 죽음에 대해 워낙 오래 얘기해와 서로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윤희수 인턴기자(덕성여대 정치외교학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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