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대공황으로 어려움에 빠진 캐나다 국영 해운회사는 1932년 10년 이상 된 중고 화물선들을 거의 고철 값에 내 놓았다. 건조가격이 척당 200만 달러가 넘던 이들 선박을 불과 1%인 척당 2만 달러에 6척이나 사들인 사람은 25세의 그리스 청년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1906~1975)였다. 그는 몇 년 뒤 경기가 살아나자 이를 되팔아 엄청난 수익을 챙겨 '선박왕'의 기틀을 다졌다.
■ 후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인 재클린과 재혼해 더욱 유명해진 그는 해운산업을 단순 운송업에서 투자산업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195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독점계약으로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3분의 1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중고선 구입과 매각, 신규 선박 발주 및 매각을 반복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선박투자 기법을 선보였다.
■ 해운업은 지상 최대의 도박업으로 불릴 정도로 경기변동에 민감하다. 호황기엔 조선소에 선박을 주문해도 3~4년이 걸려 중고선박이 신규선박 보다 50% 이상 비싸게 거래되는 가격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또 선박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다는 벌크선이 척당 400억원, 30만톤 규모의 유조선이 1,600억원을 호가하고, 건조기간도 길어 자금 조달이 중요하다. 해운사는 통상 선박을 담보로 가치의 최대 90%까지 장기 저리로 빌리는 선박금융을 이용해 배를 구입한다. 해운사 역량이 선단 운용 규모뿐 아니라 자금조달 능력에 달려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5위의 해운강국인 한국은 이 부문에 취약하다. 세계 선박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5% 정도다.
■ 글로벌 물동량 감소로 최근 국내 해운업체들이 알짜 자산을 파는 등 위기에 내몰리자, 금융위원회가 해운사에 대출 및 보증 서비스를 해줄 '해운보증기구'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공약한 바 있다. 일각에선 "어려운 게 어디 해운업뿐이냐"며 특혜시비를 제기하지만, 경기 변동이 유별난 해운업의 특성이나,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내 해운업 전체의 위기인 점을 감안하면 해운보증기구 설립은 필요해 보인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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