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외교는 주춤대기 외교로 불린다. 무언가 하려고 멈칫거리기만 할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워싱턴포스트의 리처드 코헨 칼럼니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뭐든 하라는 뜻에서 '두 섬싱'(Do something)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오바마 정부는 중동의 시리아 사태, 유럽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동시에 이런 주문을 받고 있다.
유혈충돌을 빚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경우 지금까지 미국의 개입은 전화통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화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경고만 할 뿐 구체적 압박조치는 내놓지 않고 있다. 19일 멕시코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 의제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집중 거론했고, 20일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부대변인은 "일련의 제재 조치가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가 이날 밤 9시 30분께 내놓은 대변인 성명에서 언급된 미국의 제재는 자국민 여행금지 조치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제 이런 미국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미 국방부의 존 커비 대변인이 "우크라이나의 대리 파벨 레베데프 국방장관이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인 경우다. 커비 대변인은 이날 "헤이글 장관이 지난 주부터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레베데프 장관이 응답하지 않고 있다"며 "매우 특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고슬라비아 사태 이후 최대 안보위기에 처한 유럽은 이런 미국의 대응에 불만이 팽배해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번 사태의 해결방향도 서로 다르게 보고 있다. 미국은 야당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으나, EU는 이보다는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친서방적인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가 더 현실적이란 판단이다. 이달 초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가 우크라이나 주재 미 대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제기랄 EU'라며 욕설을 퍼부어 막말파문을 일으킨 배경에 이 같은 미국과 EU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 주요 현안에서 갈등을 빚는 미국과 EU의 관계에 대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유럽에선 불균형 정책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달이면 내전발생 3주년이 되는 시리아 사태와 관련, 미국은 이번 주에 중동국가 정보기관 책임자인 '스파이매스터'들을 워싱턴으로 불러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헤이글 국방장관은 방공식별구역 설정 등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압박할 새 카드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문에 대해 "백악관은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며 군사개입 가능성을 배제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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