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과거사 부정 시도가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해 연말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靖国) 신사 참배를 "부전의 맹세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데 이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의 수정을 시사했다.
최대 동맹국인 미국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는 등 외교적 궁지에 몰린 일본이 위안부 만행에 대한 자기 반성문인 고노 담화를 훼손하면서까지 스스로 면죄부를 얻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스가 장관은 2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된 피해자 청취조사 내용의 기밀성을 유지하면서 전문가 집단에게 재검토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스가 장관의 발언은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일본유신회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성명, 생년월일, 출신지 등이 사실과 다르고 심지어 위안소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서 일했다는 발언도 청취조사에 포함됐다"는 질문공세에 대한 답변과정에서 나왔지만 이는 사실상 계산된 발언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직접 고노 담화의 수정을 언급해왔고 각계의 반발에 부딪히자 "고노 담화는 관방 장관의 담화인 만큼 관방 장관의 책임하에 재논의해야 한다"며 담화 수정 책임을 관방장관에게 위임했다. 스가 장관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본격적으로 수정작업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노 담화 논란의 쟁점은 위안부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나 관이 개입했느냐의 여부다. 제1차 아베 내각(2006~2007년)은 강제성을 보여주는 문서가 없다는 내용을 각의 결정, 사실상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등이 위안부 망언을 일삼는 것도 아베 내각의 각의결정을 근거로 삼고 있다.
1944년 2월 인도네시아 자바섬 스마랑 근교 억류소 3곳에서 20여명의 네덜란드 여성을 일본군이 직접 연행, 강제 매춘을 시킨 혐의로 일본군 장교와 군속이 유죄판결을 받는 등 강제 연행과 관련된 자료가 다수 존재하지만 아베 내각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아베 정권을 비롯한 일본 우익 세력들은 유독 고노 담화 피해자 청취를 문제 삼고 있다. 1993년 고노 담화가 발표되기 직전 일본 정부 관계자가 서울에서 위안부 할머니 16명을 상대로 5일간 조사한 청취조사에 의문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산케이 신문은 이들이 진술한 출생지, 생년월일, 위안부로 일한 장소 등이 사실관계와 다르다며 거짓 진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우익의원들은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을 출석시켜 당시 상황을 추궁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수 십년전 발생한 사건에 대한 다소 정확하지 않은 진술을 트집 삼아,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추악한 시도"라면서도 "이미 피해자 대다수가 사망한 상태에서 뒤늦게 사실관계를 피해자측이 증명하라고 나설 경우 고노 담화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담화 발표에 간여한 이시하라 노부오(石原信雄) 당시 관방부장관은 "증언 내용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따로 조사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당시 청취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고노 담화의 정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