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4)가 활짝 웃었다. 도둑맞은 금메달로 무너져 내리는 가슴을 뒤로 감추고, 만면에 환한 미소를 내보였다. 21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4시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 ‘플라워 세리머니’ 때 김연아가 시상대 두 번째 계단에 섰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피겨 퀸’이 설 자리가 아니었지만 그는 기꺼이 감내했다. 온 몸에 태극기를 휘감고 포즈를 취한 김연아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17년 피겨 인생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국 관중석에선 눈시울을 붉힌 관중들도 보였다. 이들은 목구멍 깊숙이 “이건 아니잖아!”라는 분노가 터져 나오는걸 애써 억누르는 듯 깊은 한 숨을 토해냈다.
어이없는 편파 판정으로 김연아의 ‘스완송’(은퇴 경기) 무대가 한국은 물론, 전세계인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은 저 보다 더 간절히 원한 선수한테 돌아갔다”라는 말을 남기고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김연아는 이날 오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홀가분하다. 판정 논란은 올림픽이라서 더 큰 울림이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라며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김연아는 이날 열린 피겨 프리스케이팅에서 144.19점을 받아, 전날 쇼트스케이팅 점수(74.92점) 합계 219.11점으로 은메달에 그쳤다. 한 차례 실수 없이 완벽한 경기를 펼친 김연아다. 반면 러시아의 ‘복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는 쇼트와 프리 합계 224.59점을 획득해 김연아의 ‘피겨 퀸’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소트니코바는 점프 후 착지 실수가 있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149.95라는 파격에 가까운 점수를 챙겼다. 편파판정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동메달은 총점 216.73점을 받은 카롤리나 코스트너(27ㆍ이탈리아)에게 돌아갔다.
일본 피겨의 간판 아사다 마오(24)는 198.22점으로 6위에 올랐다. 아사다는 전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착지 도중 빙판에 넘어지는 실수를 저질러 16위까지 밀렸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전체 3위에 해당하는 142.71점을 따내, 자존심을 회복했다.
‘포스트 김연아’를 꿈꾸는 김해진(17ㆍ과천고)과 박소연(17ㆍ신목고)은 나란히 16위, 21위에 이름을 올렸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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