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메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타는 모음이나 받침을 잘못 치는 바람에 생긴다. “난 너한테 끌려.”라는 말을 “난 너한테 꼴려.”라고 하는 식이다. 우리글은 ㅃ ㅉ ㄸ ㄲ ㅆ 등 쌍자음을 치기가 어렵고, 모음도 많은 데다 맞춤법마저 까다로워 실수를 하기 쉽다. 오늘은 받침이 잘못돼 빚어진 실수를 뒤져보고자 한다.
먼저 인터넷 유머에 흔히 등장하는 것부터-. 생일에 뭘 원하느냐는 여자친구의 질문을 받은 남자가 “딱히 원하는 건 없어”라고 한다는 게 “딱히 원하는 건 ㅇ벗어”라고 썼다. 여자친구의 생일을 물어보던 남자가 “너 생ㅇ리 언제야?”라고 했다. 남자친구에게 “나 오늘 또 울었다”고 응석을 부리려던 여성은 “나 오늘 똥루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런 사례가 참 많다.
내가 최근에 접한 것은 ‘사사오가’라는 해괴한 문자였다. 어떤 저명한 인문학자의 글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권력체계가 우주적 정당성을 가진 사사오가 행동의 체계로서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무슨 뜻인지 해독 불가능한 네 글자에 접하고 나는 내 무식과 무지를 한탄했다. 이미 자의의식이니 가휘니 한자도 병기되지 않은 생소한 단어가 많이 나와 주눅이 들어 있던 터여서 더 그랬다.
되도록이면 혼자서 뜻을 터득해보려고 이 전대미문의 사자성어를 되풀이 읽어보았지만 허사였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3인칭’이라는 단어에 처음 접한 국문학자 무애 양주동(1903~1977)은 그 뜻을 알기 위해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자꾸자꾸 되풀이 읽으면 뜻을 알게 된다는 생각에서 수없이 그 말을 다시 읽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무애처럼 한자를 넣어 생각해보자. 사사오가라, 사사오입과 비슷한 말인가? 넷은 버리고 다섯은 된다, 그러니까 四捨五可라는 뜻인가? 하지만 그렇게 대입해봐도 뜻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면 四師五家, 천자의 명령과 생각을 실현하는 데 앞장서는 벼슬아치나 명문가 또는 천자의 멘토가 되는 현인의 무리를 일컫는 것인가? 네 스승과 다섯 가문?
도저히 혼자서는 알 수가 없어 다른 사람에게 물었더니 단박에 그 뜻을 알려주었다. 현명한 독자는 이미 눈치 챘겠지만 ‘사사오가’는 ‘사상과’의 오타였다. 그도 뜻을 모르겠다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더니 “아, 그거 ‘사상과’를 잘못 친 거네요.”라고 했다. ‘사사오가’를 입력하니 이슬람 세계의 사사오가 문명, 정몽주 선생의 사사오가 학문, 이런 말이 뜬다는 것이다.
우리 중세 국어가 지금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연철(連綴) 중철(重綴) 때문이라고 한다. 체언에 조사, 어간에 어미를 연결할 때 끊어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이어 적는 게 연철이고 거듭 적는 게 중철이다. 즉 님을-->니믈, 높(高)+아-->노파’라고 쓰는 게 연철이다. ‘높+을시고’를 ‘놉흘시고’라고 쓰는 건 중철이다. 분철(分綴)이라면 '높을시고', 연철이라면 '노플시고'로 적게 된다.
하여간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오타는 중세국어를 되살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추카(축하), 조으니/조흐니(좋으니)와 같이 맞춤법에 얽매이지 않는 표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많다. 특히 ‘몸에 좋은’을 ‘모메존(모메존 알로에, 모메존 새싹채소)’, 코를 높이는 성형외과의 이름을 ‘코노피’라고 하거나 ‘참 좋은’이라는 말로 ‘참존 화장품’ 식의 상품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더하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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