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방지 대책이 발표된 날 낙하산 잔치가 벌어졌다. 앞으로 해당 경력이 없으면 공공기관 수장이 될 수 없다고 천명한 정부가 당일 이를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공공기관 개혁의 진정성에도 상처를 입혔다.
기획재정부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5년 이상 관련 업무경력 등을 계량화해 공공기관 임원 자격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낙하산 지적만 나오면 작아지거나 해명에 급급하던 정부가 마침내 관련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한국전기안전공사 신임 사장 인사는 기존 낙하산 관행을 그대로 답습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상권(59) 전 새누리당 의원을 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임명한 것은 이달 중순. 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19일 오후 이후 외부에 공개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낙하산 논란을 의식해 별도의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취임식(21일)을 하루 앞두고 알려진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기재부가 낙하산 방지 대책을 만들고 있는 와중에 청와대는 이 사장 임명절차를 진행했던 것이다.
이 신임 사장은 부장검사 출신으로 2007년 박근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 대표의 대통령후보 경선대책위원회 인천총괄본부장을 맡았다. 2010년 7월 인천 계양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친박계로 분류될지언정 '에너지분야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유사경력을 찾자면 약 2년간 의정활동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했다는 정도다. 기재부 업무보고 전에 임명이 되긴 했지만 '5년 이상 관련 업무경력'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업무보고는 20일에 했지만 관련 대책이 확정된 건 18일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문제 해결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12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할 당시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여권 정치인 김성회, 김학송 전 의원을 임명해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이후에도 낙하산 인사는 계속돼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을 지낸 황천모씨는 지난달 20일 대한석탄공사 상임감사, 문제풍 새누리당 전 충남도당 서산ㆍ태안당원협의회 위원장과 박대해 전 의원은 최근 각각 예금보험공사와 기술보증기금 감사 자리를 꿰찼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일단 언행일치가 안 되니 국민은 물론이고 공공기관들마저도 공기업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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