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은 차라리 용광로였다.
피겨 스케이트화를 신고 17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빈 김연아(24)의 ‘스완송’(Swansong)이 맹렬한 용광로에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4분10초 동안 배경음악 ‘아디오스 노니노’가 흘러 나오는 가운데 환희와 성취, 눈물과 애환이 남김없이 녹아 들었다. 스완송은 백조가 죽기 직전 부르는 마지막 노래다. 운동선수들의 은퇴 경기와 예술가들이 남긴 최후의 작품들을 뜻하기도 한다.
2014 소치동계올림픽 싱글 여자 피겨 ‘최후의 승부’ 프리프로그램이 펼쳐진 21일(한국시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경기장내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작별을 고하는 ‘백조’ 김연아에게 빨려 들어갔다. 이 즈음 빙판은 용광로에서 블랙홀로 얼굴을 바꾸었다. 250초 몽환적인 추억을 남기고, 김연아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앞서서 걸어간 사람은 있었지만,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올림픽 피겨 챔피언. 김연아는 그곳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밟았다. 그 자체만으로 그는 한국 스포츠 ‘퀀텀점프’(획기적인 도약)를 일군 선구자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
피겨와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운명이었다. 1996년 코흘리개 일곱 살 유치원생 꼬마였을 때다. 놀이 삼아 과천 빙상경기장을 찾은 게 운명을 바꿔놓았다. 지도자 류종현 코치의 눈에 띄었다. 2년 후,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김연아의 눈에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선수가 밟혔다. 중국계 미국인 미셸 콴이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흥분이 일었다. 본격적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마침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일본)가 등장해 자극이 됐다. 우승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전세계 빙판을 지쳤다.
김연아는 자서전 에서 “오늘 성공하지 못하면 집에 안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연습했다”라며 “트리플 5종 점프를 완성하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주니어를 평정한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로 눈길을 돌렸다. 목표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4년 후 다시 밟은 올림픽 무대. ‘피겨 여왕’김연아의 마지막은 행복했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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