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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현대사료 제공하는 제주 양신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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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현대사료 제공하는 제주 양신하씨

입력
2014.02.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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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87년 3월 2일, 날씨 맑음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날이다."

옅은 갈색의 '백로지' 일기장에 쓰인 1954년 일기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사는 양신하(76)씨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소감이 그의 첫 일기에 빼곡히 적혀 있다.

양씨는 올해로 61년째 일기를 써 오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그의 일기장은 무려 60권이나 된다. 그는 일기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단지 기록하는 게 좋다"며 "일기란 기록을 통해 지나간 사실들이 후손들에게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집에는 옛날 문서와 신문 스크랩 등이 빼곡히 정리돼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건네받은 명함에 며칠 어디서 만났는지를 써 둔다. 이런 정리 벽 덕에 향토사학에도 밝아 대정읍 역사문화연구회장을 오랫동안 지내왔다.

그의 일기는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의 역사적 사료로써도 빛을 발했다. 정부 수립 전후 제주 섬에서 발발한 제주4ㆍ3사건의 진상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2003년에는 그의 일기가 역사를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자료가 됐다.

대정읍 섯알오름에서 큰 형님의 유해를 수습했다는 1956년 5월 18일 일기가 1차 진상조사보고서에 '백조일손지묘'로 잘 알려진 섯알오름 학살사건의 첫 유해발굴일로 고스란히 기록된 것이다. 양씨는 "1960년대 작성한 경찰의 동향보고서는 1956년보다 2년 늦은 58년에 유족들이 섯알오름에서 유해를 수습했다고 돼 있어 초기 진상조사에서도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며 "당시 진상조사팀에 내 일기의 내용을 알려 공식 기록됐다"고 설멍했다.

양씨의 일기에는 학비 2분기 900환을 못내 집에 되돌아갔던 일 등 당시 물가와 대정읍의 사회생활이 담겨 있다. 이런 학교의 기록은 대정고등학교 50년사에 실렸다.

또 최근 발간을 준비하는 향토지인 '대정읍지'에도 그의 일기가 좋은 사료로 쓰이고 있다. 양씨는 편찬위원장을 맡아 직접 향토지를 만들고 있다. 그는 낡은 종이에 적힌'새 철들어 새 고구마를 먹었다. 맛있었다'는 60년 전 순수했던 학창시절 일기를 읽고선 "이런 일도 있었네"라며 너털웃음 지었다.

서귀포시=정재환기자 jungj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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