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RO(Revolution Organizationㆍ지하혁명조직)의 존재를 국가정보원에 제보한 이모씨의 진술과 지난해 5월 RO 모임 참석자들의 대화 내용, 제보자와 홍순석ㆍ한동근 피고인이 사상학습을 했다는 '세포모임', 피고인들의 압수물 등이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RO를 내란의 주체로, 이 의원을 RO의 총책으로, 5월 모임은 실체적 위험성이 존재하는 내란모의로 봤다. 재판부는 내란에 대한 세부 계획이 없고 실행이 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위험성이 상당해 내란음모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RO 모임은 비밀결사조직 특성 드러내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지난해 5월 10, 12일 각각 경기 광주시와 서울 합정동에서 가진 RO 회합의 녹취파일이었다. 10일 모임이 오후 10시40분이라는 늦은 시간에 휴대폰 전원을 끄고 모임장소 1㎞ 전에 차에서 내려 걷는 등 비밀리에 이뤄졌지만 "전쟁터에 아이를 데려 오냐"는 이 의원의 질책과 함께 10여분 만에 끝난 점, 회합을 연기하면서 참석자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 등을 비밀 결사조직의 특성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의원의 김근래 피고인에게 한 발언을 놓고 벌어진 논란에 대해 "지금 오나"였다는 변호인측 주장 대신 북한 군대용어인 "지휘원"이라는 검찰측 손을 들어줬다.
'저놈' '적들'은 대한민국 지칭
12일 모임은 당시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로 다가올 전쟁이 곧 강력한 혁명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본 이 의원이 정치ㆍ군사적 준비를 지시하는 자리였다고 판단했다. "저놈들의 통치에 파열구를 내고 전선의 허를 타격하는"(이석기),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전기ㆍ통신 분야에 대한 공격"(김근래), "적들의 통신망, 도로망에 대한 준비"(우위영 통진당 전 대변인) 등에 나온 '저놈' '적들'이 전후 문맥 상 대한민국을 의미한다고 인정했다.
권역별 토론회 결과 발표를 듣고 난 후 이 의원의 태도 역시 유죄 판단에 크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철도ㆍ통신시설의 폭파 및 총ㆍ폭탄 준비 등 강경 발언이 나온 토론 결과를 들은 이석기 피고인은 논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탑 파괴의 사례를 들어 주요시설 파괴의 효과가 지대함을 강조하는 등 토론에서 다루어진 후방 교란 논의를 독려하고 즉각적인 활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의 녹취록 고의 오기(誤記) 주장에 대해서는 "녹음된 대화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은 그 속성상 녹음 당시 실제 대화 내용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며 "하지만 이러한 내용의 불일치가 증거능력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세포모임' 홍순석, 지휘성원 역할
재판부는 제보자 이씨가 법정에서 타인에게 들은 내용을 과장되게 설명했지만 RO의 가입의식과 조직원의 5대 의무, 세포모임 등 활동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고 상세하다고 판단했다. "조작된 허위 진술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인물들과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경험들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소개하고 진술 태도도 자연스러워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3월 28일 세포모임에서 홍순석 피고인이 "조직, 세포별로 다 결의대회 하라고…"라는 발언과 조직원을 '남형' '강형' 등 조직명으로 부른 것을 예로 들며, 그의 태도가 이씨가 주장하는 지휘성원의 역할, 즉 세포모임을 장악하고 구성원의 학습상태나 활동상황을 수시로 확인하며 보고받는 모습과 일치하는 것으로 봤다.
압수 물품도 RO 총책ㆍ조직원 증거
재판부는 'cell(세포)은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이자 O의 기본단위' 'O지휘체계와 RㆍO관으로 무장하자' 'RO 생활을 강화하자'고 적힌 문건 등 이 의원 등의 자택과 사무실에서 압수된 물품들도 이들을 RO 총책과 조직원으로밖에 볼 수 없는 증거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비롯한 5월 회합 참석자 130여명은 모두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철저한 보안수칙과 지휘통솔체계에 의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RO 구성원들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이들을 내란의 주체로서 조직화된 다수인의 결합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밝혔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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