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해 8월 운전 중 부산 금정구의 한 오르막길에 신호 대기하던 택시의 뒷범퍼를 살짝 들이받았다. 두 차량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택시기사는 "함께 탄 가족들이 많이 놀랐으니 1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A씨가 거절하자 B씨는 멀쩡한 범퍼를 새 것으로 교체한 견적서, 본인과 동승했던 가족 등 3명의 상해진단서(각 2주)를 보험사에 제출해 186만원을 받아 챙겼다.
억울함을 참지 못한 A씨는 경찰에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사고차량의 블랙박스와 A, B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마디모(MADYMO)' 검사를 의뢰했다. 마디모는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가해, 피해 차량의 움직임 등을 분석해 피해 정도를 추정한다. 마디모 검사 결과 'B씨 차량이 충격을 받아 앞으로 밀려날 때의 속도는 시속 5㎞로 추정되며, 이 정도의 에너지로는 경추 및 요추 염좌 등 진단서에 기재된 상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견이 통보됐다. 경찰은 이 결과와 담당의사의 소견서 등을 종합해 B씨를 최근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부풀린 병원 진단서와 수리비 견적서를 제출해 돈을 받아내다 사기죄로 기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찰이 이처럼 사고상황 재현 프로그램 '마디모'를 이용해 피해자 주장의 진위를 가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해 5월 시속 10~20㎞로 서행 중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던 차량을 들이받은 후 과도한 합의금과 치료비를 요구한 C씨를 사기 혐의로 송치하게도 했다. 이 때도 마디모 검사 결과와 가해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다.
마디모 같은 가상실험 프로그램은 외국에서는 이미 적극 활용되고 있다. 독일, 일본에서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고 당시 상해를 입힐 정도의 충격이 없었다고 판단되면 보험사가 피해자의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동훈 도로교통공단 사고조사 연구원은 "마디모를 활용하면 경미한 사고의 가해자가 행정처벌을 받거나, 피해자가 과도한 금전적 이득을 얻는 불합리한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마디모 프로그램이 보험료 인하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박중묵 현대해상 보험조사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병원에 입원하는 비율이 일본에 비해 8, 9배 높을 정도로 보험금이 과다하게 지급되고 있다"며 "마디모 도입으로 이런 관행이 사라지면 보험료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소연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 기획팀장도 "우연히 발생한 사고의 피해를 부풀려 청구하는 '연성 사기'에 대해 수사기관이 위법성을 가리기 수월해진 만큼 국민들도 연성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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