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주민 윤재중(49)씨는 퇴근 후 자신이 사는 다세대주택 주차장에 무단주차한 사람과 심한 말싸움을 했다. '주택 거주자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왜 차를 댔느냐. 차를 빼라'는 윤씨의 요구에 차 주인은 "지방에 있어 갈 수 없다"며 배짱을 부렸다. 휴대폰으로 30여분간 고성이 오간 끝에 윤씨가 "당장 차를 견인하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차 주인은 어디선가 나타나 차를 빼갔다. 윤씨는 "무단주차 차량 주인들을 찾아 입씨름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며 "주차장 입구에 견인 경고 문구를 붙여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탄했다.
사유지에 무단주차를 하고 사라지는 얌체족으로 주민 갈등이 빈번하지만 행정당국은 "뾰족한 수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당사자들끼리 직접 해결하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사유지에서 발생하는 무단주차 문제는 개인간의 일이어서 행정기관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피해 당사자의 신고를 받아도 무단주차 차주에게 차량을 이동하라고 권유하는 정도만 가능할 뿐"이라고 말했다. 주차 관련 민원이 빈발하는 지역에 대한 실태 파악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급한 일이 생겨 차량을 견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경찰은 사유지에 무단주차 한 차량은 도로교통법상 단속 대상이 아니어서 함부로 견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이 긴급한 이유로 무단주차 차량을 견인하려면 자비로 해야 하고, 만약 견인 중 차량이 파손되면 수리비용도 견인을 의뢰한 주민의 몫이 된다"고 설명했다. 장기간 방치된 차량이라면 구청에 신고해 견인을 요청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울시 관계자는 "견인까지 행정절차가 한 달 가량 걸린다"면서 "하루 이틀 정도 무단주차했다고 바로 견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적 절차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보니 주민들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사유지 무단주차 차량에 대처하는 '꼼수'를 공유하기도 한다. 네이버 한 카페 게시판에는 '사유지 무단주차 해결'을 위한 수십 가지 방법이 게시돼 있다. ▦무단주차 차량 주인이 차를 이용할 수 없도록 운전석 문 옆에 바짝 붙여 주차하기 ▦차 주위에 벽돌을 쌓고 무단주차 차주가 벽 철거를 요구하면 비용 청구하기 ▦'차 빼시오'라는 내용의 메모지를 차 유리에 붙일 때 잘 떨어지지 않는 접착제 정보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민들간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복성 꼼수를 잘못 사용하면 무단주차 피해자가 자칫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며 "개인 간 발생하는 일이지만 폭행 등 주민 간 2차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만큼 법적, 행정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이진주 인턴기자(이화여대 불어불문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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