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그제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블라디미르 그리고레프 선수도 덩달아 은메달을 따내어 러시아의 쇼트트랙 신흥강국 이미지가 한결 뚜렷해졌다. 남자 쇼트트랙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힌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케 한다. 반면 한국의 쇼트트랙 강국 이미지는 이번 동계올림픽대회를 통해 여지없이 흔들렸다. '빅토르 안'의 귀화를 보는 안타까움이 더한 이유다.
■ 그의 러시아 귀화를 둘러싼 논란은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 전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스포츠 문외한의 귀까지 간지러울 정도였다. 소치 올림픽 개막 직전에 열린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남자 500m와 1,000m, 3,000m, 5,000m 계주에서 우승해 4관왕에 올랐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당시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 '소치의 영광'을 예고했다. 부상과 침체를 넘어선 부활만으로도 인간승리 드라마를 펼친 셈이지만, 러시아 유니폼에 많이 가려졌다.
■ 그 대신 '누가 그를 러시아로 내몰았는가' '누가 그에게 러시아 국기를 들게 했는가'등의 논란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 빙상계, 아니 체육계 전반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온 파벌 싸움과 짬짜미(담합)가 연일 비난의 표적이 됐다. 특정 선수나 코치의 과거 행위에 비난이 집중되고, 그에 대한 반론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 비리 근절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면, 이미 단순 논란을 넘어 제도적 수술이 필요한 병증에 이르렀음이 분명하다.
■ 이런 논란의 진위 못지않게 눈이 가는 게 있다. 잠시 나왔던 '조국의 배신자' 같은 주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개인의 구체적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주의적이거나 민족중심적 잣대를 들이대던 한국적 악습이 묽어졌다. 가장 국가ㆍ민족 중심주의에 젖기 쉬운 올림픽의 속성에 비추면 눈을 비비고도 남는다. 워낙 출중한 선수라서 감히 비난하지 못하는 비겁이 아니라, 국적조차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려는 자세가 싹텄다면 이번 논란의 부수적 성과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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