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 중인 한국 쇼트트랙이 좀처럼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녀 통틀어 앞으로 3개 종목이 남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대표팀은 지난 15일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심석희(17·세화여고)가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만족해야 했다. 남자 대표팀의 신다운(21·서울시청)은 1,000m 결승에서 실격되며 또 한 번 고개를 떨궜다. 당초 심석희는 금메달, 신다운은 최소 동메달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부쩍 성장한 유럽 선수들의 선전 속에 중국, 러시아의 금빛 레이스가 계속됐다. 우리나라는 이날까지 벌어진 남자 2개 종목(1,000m·1,500m) 여자 2개 종목(500m·1,500m)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남자 대표팀은 아예 노메달 위기다. 확실한 메달 후보로 거론되던 5,000m 계주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이한빈(26·성남시청), 신다운이 출전하는 500m에서 기적을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이한빈은 올 시즌 500m 37위, 신다운은 38위다.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독보적인 이 종목 랭킹 1위에 오른 가운데, 우리 선수들은 예선 통과 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만약 한국이 500m에서도 시상대에 서지 못하면 온갖 판정 시비와 사건, 사고로 점철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이후 12년 만에 메달 없는 빈 손으로 귀향해야 한다.
경험 부족과 에이스의 부재가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은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은 노진규가 부상으로 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신다운에게 많은 기대를 했다. 실제로 신다운은 2013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소치에서의 호성적을 노렸다. 그러나 1,000m 결승에서 보듯 폭발적인 스피드도, 상대의 빈틈을 공략하는 예리한 추월 기술도 부족했다. 1,500m 준결승에서 선두로 달리다 넘어진 그는 1,000m 결승에선 무리한 인코스 추월로 눈앞의 메달을 놓쳤다.
남자 쇼트트랙 경우, 기본적인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캐나다의 간판 샤를 아믈랭이 주로 쓰는 초반 스퍼트, 전 종목 결승 진출을 노리는 안현수가 즐겨 쓰는 레이스 막판 인코스 추월이다. 아믈랭은 본인이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듯 시즌 초반 걸을 수 없을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한 결과 올림픽을 앞두고는 강한 체력을 보유하게 됐다. 레이스 초반부터 1위로 치고나가 끝까지 자리를 뺏기지 않는 전략으로 1,500m 금메달도 거머쥔 것이다.
통상 1위로 달리는 선수는 공기 저항 탓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스피드스케이팅의 팀 추월, 사이클 같이 트랙을 도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하지만 아믈랭은 레이스 막판까지 체력에는 남다른 자신이 있다. 마지막 바퀴 때는 오히려 힘을 비축한 2,3위권 선수들 보다 스피드가 빠르기로 유명하다. 아쉽게도 한국 선수 중엔 아믈랭 보다 체력이 뛰어난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안현수는 좀처럼 선두로 치고 나가지 않는다. 2,3바퀴를 남기고 서서히 스피드를 끌어올려 앞선 선수의 빈틈을 공략하는 게 주된 전략이다. 한 빙상 관계자는 "우선적으로 다른 선수에게 걸려 넘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안현수는 레이스 중반까지 거리를 둔다. 그러다 빈틈이 보일 때 그대로 파고 든다"며 "스케이트 기술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안현수는 순간 낼 수 있는 최고의 스피드를 내고, 여유롭게 레이스를 펼친다. 한국 선수들과 기량 차가 크다"고 말했다.
팀 동료의 발전도 이끄는 게 안현수의 매력이다. 이번 대회 1,000m 은메달리스트인 블라디미르 그리고레프는 한국 나이로 서른 넷이다. 그 간 국제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은퇴까지 결심했지만 안현수의 귀화를 계기로 스케이팅 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했다. 안현수와 그리고레프는 특히 1,000m 결승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상대를 견제하면서 러시아 잔치로 경기를 끝냈다. 에이스가 없어 우왕좌왕 하는 한국 선수단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결국 이번 대회 남자 대표팀의 실격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체력에서 우위에 있지 않고, 추월 기술에 능하지도 않다 보니 무리하게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트랙에서 여유가 없고 코너를 돌면서 자신도 없다보니 스스로 경기를 망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대회 전부터 모든 시선이 안현수에만 쏠린 것도 남자 대표팀의 집중력을 저해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나마 한국은 남은 경기 여자 대표팀의 메달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여 위안 거리로 삼고 있다. 500m 박승희, 1,500m 심석희에 이어 1,000m, 3,000m 계주에서도 무난히 시상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심석희는 주종목인 1,500m에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남은 종목, 대회 2관왕을 차지해 '차세대 쇼트트랙 여왕'으로 자리를 굳힌다는 각오다. 함태수기자
한국스포츠 함태수기자 hts7@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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