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귀환이다. 그러나 대관식을 올리기엔 아직 이르다.
안현수(29ㆍ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을‘점령’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8년만이다. 안현수는 18일(이하 한국시간) 500m와 21일 5,000m 계주에서도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토리노에 이어 소치올림픽에서도 3관왕이 유력하다. 세계 쇼트트랙의 역사를 바꾸는 지존의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이름 앞에 황제라는 수식어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전ㆍ현직 쇼트트랙 챔피언들조차 안현수를 ‘영웅’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현수의 가슴에는 태극마크가 붙어있지 않다. 그는 ‘푸틴의 아들’로 소치올림픽에 나섰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기 때문이다. 이름도 안현수를 버리고,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다. 빅토르는 ‘승리(Victory)한다’는 의미에서 따왔다. 안현수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파벌 싸움 폭로로 ‘미운 털’
안현수는 2006년까지 김기훈-김동성으로 이어지는 한국 남자쇼트트랙 계보의 ‘적장자’(嫡長子)였다. 그러나 그는 2010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대표팀 선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토리노 올림픽 직전, 쇼트트랙계의 적폐였던 한체대와 비(非)한체대 파벌싸움을 폭로했다. 한체대를 졸업한 안현수는 비한체대 출신 코치가 이끄는 남자 대표팀을 이탈해, 여자 대표팀에서 ‘나 홀로’ 훈련을 했다. 그는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분위기에서 더 이상 훈련을 계속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현수는 올림픽 직후에도 “(이대로라면) 운동을 그만두겠다”라고 폭탄 선언을 했지만 ‘울림’은 크지 않았다.
안현수는 그러나 2008년 1월 훈련 도중 왼쪽 무릎뼈와 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으로 4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선수 생명에 치명적이었다. 빙상인들은 “안현수는 재기 불능”이라고 수군거렸다. 안현수는 그러나 오랜 부상을 털고 2010년 4월 예정된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대표 선발전이 돌연 9월로 연기되면서 ‘안현수 죽이기’ 논란에 휩싸였다. 2010년 5월 6일부터 4주간 안현수의 기초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9월 대표 선발전은 명백히 안현수를 탈락시키기 위한 음모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안현수는 결국 그 해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집에서 TV로 지켜봐야 했다. 소속팀 성남시청이 재정부족을 이유로 팀을 해체하는 불운 속에 안현수는 2011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재응시했다. 4명을 뽑는 선발전에서 안현수는 5위에 그쳤다. 그러나 순위는 안현수의 관심권 밖이었다. 안현수는 이미 러시아 귀화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당시“한국에서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푸틴의 품’에 안긴 안현수는 2013년 2월 소치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5차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현수는 한 달 후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열린 2013 세계선수권 500m에서도 은메달을 차지해 6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시상대에 다시 서는 등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지난달 20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14 유럽 쇼트트랙선수권에선 4관왕을 거머쥐며 소치 올림픽을 정조준했다.
안현수가 남긴 기록들
안현수의 첫 올림픽출전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다. 당시 17세로 서울 신목고 1학년이던 안현수는 김동성과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 리자준(중국) 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빈 손으로 귀국했지만 그 해 4월 세계선수권에서 김동성에 이어 종합 2위로 뛰어 올랐다. 안현수는 이듬해부터 2007년까지 5년 연속 세계선수권 종합1위에 올라 쇼트트랙 지존의 자리를 굳혔다.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5연패는 안현수가 처음이다. 토리노 올림픽 3관왕(1,000m, 1,500m, 5,000m 계주)도 접수했다. 안현수는 특히 500m에서도 동메달을 보태,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쇼트트랙 전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기록도 함께 세웠다.
안현수는 누구
1985년 11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안현수는 명지초등학교 1학년 때 학급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전국대회를 석권하는 등 신동(神童)으로 이름을 날렸다. 동계체전도 안현수의 독무대였다. 태극마크는 2002년 신목고 1학년 때 달았다. 러시아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 안현수의 목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그는 또 향후 러시아 빙상연맹 코치를 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치=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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