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우연한 일을 계기로 조금씩 바뀌다 보면 어느 순간 많이 바뀐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중학교 기술과 고등학교 공업은 수학보다도 싫은 과목이었다. 그나마 수학은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기술과 공업은 그런 재미도 없었다. 교련처럼 교과목에 들어 있어 학교에서 가르치니 그저 건성으로 훑는 시늉만 했다.
그런 체질은 오래도록 변함이 없었다. 도구와 연장은 어릴 적의 산골 생활 덕분에 몸에 익어 제법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지만, 전기나 전자제품은 손 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것을 문과 체질의 징표라고 믿었고, 그 믿음대로 대학 전공과 직업을 택했다. 그 선택이 잘못이라고 후회하지는 않지만, 문득문득 자연계 대학에 진학해 생화학을 전공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 지가 10년이 넘었다. '문과 인간' 치고는 결코 작지 않은 변화다.
고장 난 교환대와 전화기 등 유선통신 장비를 고치는 정비병으로 군 복무를 한 것이 첫 계기였던 듯하다. 회로개념조차 없어 콘센트에서 빼어둔 플러그에도 감전될까 겁을 내던 문과 출신이 두세 달 만에 주요 장비 전자회로를 외우고, 고장 난 부분을 탐지해 납땜질로 부품을 갈아 끼울 수 있게 된 것은 군대가 아니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속성(速成) '인간 개조'인 셈이다. 어쨌든 그런 개조의 결과로 전자제품 일반은 물론이고 기계에 대한 생소함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아가 인간과 사회와는 달리 인과관계가 분명한 물(物)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지금까지도 인간 이외의 미생물이나 동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꾸준히 커져 온 것이 다 그 연장선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특정 연령대에 이르러 발현해 병증을 드러내는 악성 유전인자처럼 변화의 씨앗이 잠재하지 않고서는 계기를 만나도 좀처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응용과학이나 기술에는 무관심했지만, 순수과학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핏줄 속을 돌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중학교 1,2 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각각 생물과 화학 담당이었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택한 뒤에도 화학 선생님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당시는 패러데이의 이나 왓슨과 클릭의 에서 이나 이상의 감동을 느끼던 때였다.
한동안 잊었던 그런 호기심을 일깨워준 것은 대학 때의 과학사 강의였다. 과학혁명 등에 대한 송상용 교수의 강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영향으로 서점에서 카프라의 과 함께 집은 책이 였다. 난해한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개념과 성과를 비교적 친숙한 불교와 도교 등 동양사상에 빗대어 쉽게 설명한 서술 방식은 비슷했지만, 쉬운 비유로 과학사적 성과와 전체적 맥락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서는 가 앞섰다. 물리학자나 수학자나 읽어낼 수 있는 수학적 기술(記述)을 멋들어진 일반어로 '번역'한 저자와 영어를 매끈한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의 능력이 빛나 골치 아픈 수식(數式) 하나 없이도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빛의 정체를 둘러싼 파동설과 입자설 각각의 전개과정과 그 통합, 흑체(黑體) 복사, '슈뢰딩거의 고양이', 특수상대성 이론, 불확정성 원리, 네 가지 힘 등이다. 지금은 하나 같이 다 내용이 어렴풋하지만, 그때는 양자역학, 또는 소립자론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했다고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아원자, 즉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현실세계와 달리 왜 있음과 없음을 분명하게 가를 수 없는지, 4차원을 넘어 수십 차원으로 마구 뻗어가는 아원자 세계는 수학적으로는 포착할 수 있어도 3차원에 한정된 인간의 지각 경험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는 등의 설명은 절에서 많이 듣던 소리와 닮았다.
나온 지 오래되어 지금도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물리학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만 그런 발전을 이해할 바탕으로서는 한참 뒤에 나온 세이건의 와 함께 언제든 새로 꺼내 읽을 만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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