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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14일] 힐링유감

입력
2014.02.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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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힐링을 주제로 하는 TV프로그램에서 한 철학자가 연기자 지망생에게 조언을 해주는걸 들었다. 그 철학자는 당신이 진정으로 배우를 원한다면 꿈을 버리지 말고 더 노력을 해야 하며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끈기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으니 대학로든 어디든 당신이 연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게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짧은 TV강연에서 그 철학자의 조언의 의미를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난 그 조언을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자칫 오해를 하면 세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노력을 덜했거나 끈기가 없어서일 꺼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영 마음이 불편했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난 영화계에 입문해서 마흔이 넘어서야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27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미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10년이 넘게 부모와 형제의 도움 없이는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무능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가 흥행을 하면서 그때부터 가족을 돌볼 수있는 가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난 꿈을 버리지 않고 영화계에서 끈기 있게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가 되었다고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데 한번도 후배나 동료들에게 내 사례를 들어서 더 노력하고 끈기 있게 꿈을 이뤄나가라고 조언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나는 '꿈을 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개그맨지망생이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웃기는걸 좋아했고 대학 다니면서도 개그맨의 꿈을 키워왔다. 그래서 대학 때는 개그오디션이나 개그맨공채시험에도 응시하려고 했으나 코미디 연기자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걸 알았다. 카메라 앞에서 한 연기를 다시 보게 되면 쉽게 흥분을 하고 표정이나 감정연기가 너무나 어설프고 부족해서 개그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했다.

그리고는 코미디 시나리오를 썼다. 그게 나의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이다. 이후 운 좋게도 몇몇 영화는 실패 하고 몇몇 영화는 성공 하면서 지금까지 영화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난 내가 개그맨이 안된 것에 대해서 미련도 있고 조금 더 해 볼 걸 하는 후회도 있지만 지금 영화제작자로서의 삶이 나쁘지는 않다.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열망은 술자리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 동료를 웃게 만들고 분위기를 띄우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살지만 그래도 현재의 내 생활도 충분히 즐기면서 살고 있다.

주변에 감독 지망생이나 연기자 지망생들이 많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또 노력을 하지만 상업영화감독이나 이름이 알려진 연기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그런 친구들이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또 조언을 원할 때 그들에게 "노력이 부족하고 끈기가 없어서 꿈을 이루지 못한 거니 더 노력하고 더 끈기 있게 매진하라"라고 조언을 건넬 용기가 없다. 난 그저 그들을 잘 가는 막걸리집에 데려가서는 하소연을 듣고 막걸리 한사발을 건네면서 "아무래도 운이 없는 것 같다. 내가봐도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운이 없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다"라고 다독여준다.

이런 조언이 소위 '영혼이 없는 조언'이고 절대 도움이 될 수 없는 조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난 정말 그들에게 이 말 밖에는 해 줄 말이 없다. 그리고 술이 한 순배 돌면 꼭 영화일말고도 나름 그 후배가 잘 할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일도 많다는 것을 조금씩 말해 주기 시작한다.

난 그들이 꿈을 이룬다는 미명하에 아까운 청춘을, 다시올 수 없는 황금의 시기를 실의와 좌절 속에서 그리고 현실적인 생활인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랑 일한 조감독은 지금 영화일을 그만두고 요리사를 하고 있지만 그 친구가 불행하다고 이야기하는걸 들어본 적이 없고 어떤 이는 의사를 그만두고 캐나다에서 번역일을 하고 있지만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당신의 꿈이 꼭 하나일 이유가 있는 겁니까?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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