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민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안철수 신당(가칭 새정치신당)의 지지율 하락을 야권 지지자의 전략적 선택으로 설명했다. "안철수 의원에게 기대한 것은 민주당을 자극하고 야권의 파이를 키워주는 메기 역할입니다. 그런데 야권연대 없이 제 갈 길을 가겠다니 결국 새누리당 어부지리 시켜주는 것 아닙니까." 특히 호남지역에서 이런 걱정들이 두드러졌고 큰 폭의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텃밭이자 안풍(安風)의 진원지였던 광주에서 급전직하하는 지지율 설명으로는 그럴듯해 보였다.
신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어디 이뿐이랴. 한국갤럽은 최근 민주당이 호남지역에서 신당 지지율을 역전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존 유력 정치인들이 포진한 민주당과 아직 안철수 의원 외에는 새로운 인물이 보이지 않는 신당이 대비되어 야권 지지층이 민주당으로 결집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지지부진한 영입작업이 새정치를 향한 열망과 기대에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안철수 의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 여론조사 기관이 추세적인 지지율 하락을 경고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안 의원 측에서는 "창당작업이 우선이다. 지지율에서 거품이 빠진다면 기초가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며 의연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어딘가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났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적어도 '이상과 현실'의 문제로 던져진 두 사안은 안 의원이 인정하건 말건 창당의 선결과제가 분명해 보인다.
우선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폐지 문제다.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 공약했던 정당공천 폐지는 새누리당의 공약 번복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현실화가 불가능하게 됐다. 민주당과 함께 이 문제를 정치개혁 과제로 내걸었던 안 의원이 새누리당을 향해 '공약 파기'를 주장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상을 좇아 공천을 포기할 수도 없다. 전체 2,888명 가운데 1,000여명의 기초의원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야 현역 프리미엄을 앞세워 '선제적 무공천'을 천명할 수 있지만 세력 확장이 절실한 신당은 그럴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 의원과 신당이 당면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첫 번째 딜레마다. 현실을 좇아 전국 226개 기초선거 단위에서 단체장과 의원 후보를 물색하는 과정이 일단 쉽지 않고 후보 공천을 결정하는 순간 스스로 표방한 새정치는 빛이 바래고 만다.
야권연대는 더욱 심각한 딜레마다. 안 의원은 야권연대를 '패배주의적 발상'으로 규정하고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기득권 세력'으로 부정하고 신당을 출범시키는 마당에 기존 정당과 손부터 잡는 것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론된 후보들의 지지율로는 3자 구도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한 곳도 챙기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게 현실이다. 도리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수도권에서 신당 후보가 완주를 강행했다가 새누리당에 전승을 몰아주기라도 하면 야권 패배의 책임은 오롯이 신당에게 돌아갈 판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 '유연한 선거연대'를 주장한 뒤로 신당의 입장이 다소 유동적으로 변한 것도 이런 고민 때문일 것이다. "야권연대는 자살행위지만 딜레마"라는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의 말에는 그런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정당공천과 야권연대는 수학 계산공식이 아닌 정치문법으로 접근할 사안이다. 때문에 IT 전문가 출신의 안 의원에게는 힘든 과제가 아닐 수 없고 해법을 내놓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선택을 미룬다면 '안개 정치인 안철수'의 부정적 이미지만 커진다. 정치인은 선택의 결과에도 무한 책임을 지는 법이다.
안 의원은 지난달 창당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고민은 거대한 구상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의 고민은 이제 그의 운명이 돼 버렸다.
김정곤 정치부 차장대우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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