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석씨 등 5명 재심 판결서 명예 회복
13일 오전10시30분 부산지법 254호. 중년 남성 5명이 피고인 석 앞에 나란히 섰다. 20여 분간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재판장이“모두 무죄를 선고합니다”며 말을 맺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법정을 나선 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서로 손을 맞잡았다. “너무도 긴 시간이 흘렀지만 어쨌든 진실이 밝혀져 대단히 기쁩니다. 33년 전 헌신적으로 변호했던 노무현 변호사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우리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 당하는 시민이 없었으면 합니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한영표)는 이날 1980년대 부산지역 최대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釜林)사건’의 재심 청구인 고호석(58), 최준영(60), 설동일(57), 이진걸(55), 노재열(56)씨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계엄법, 반공법 위반 등 모든 죄를 벗어내며 33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심 변호를 맡았던 이 사건은 최근 영화 ‘변호인’을 통해 재조명 되면서 판결에 시선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 및 민주주의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엄격히 적용되는데, 피고인들이 벌인 학생 운동이나 현실 비판적 학습 행위만으로 이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공소 사실을 자백한 건 사실이나, 당시 영장 없이 불법 체포 돼 20일 이상 구금된 상태에서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되기 때문에 자유의지로 자백했음을 의심할(허위 진술을 했을) 사유가 상당하다”며 “당시 유죄 근거로 쓰인 피의자 신문 조서의 증거 능력이 상실된다”고 밝혔다.
부림사건은 전두환 정권 초기였던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부산지역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불법 체포ㆍ감금해 고문한 뒤 국가보안법ㆍ계엄법ㆍ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당시 19명이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년6월∼6년 형을 최종 선고 받았으나 이후 9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김재규(65)씨 등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1999년 한 차례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2006년 5ㆍ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재항고해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심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2009년 재심에서 계엄법 위반과 집시법 위반에 대해서만 무죄 또는 면소 판결했다. 당시 재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파기하지 않아 따로 결정할 수 없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해 각각 집행유예 2년∼징역 1년6월과 함께 자격정지 8개월∼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고씨 등 5명은 2012년 8월 다시 재심을 청구해 이번 재판이 성사됐다. 이날 선고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계엄법 위반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이 계엄령을 위반해 집회를 연 것은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전후해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 행위에 해당한다”며 무죄 판결했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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