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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종합물류’ 박제성 대표 엠플러스한국 효특집 - 나의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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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종합물류’ 박제성 대표 엠플러스한국 효특집 - 나의 아버지 -

입력
2014.02.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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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수백 억 돈 대신 선택한 것

중고교 시절, 나는 종종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버지의 ‘원칙주의’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남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아버지는 돈을 벌 기회도 원칙에 어긋나면 차버리기 일쑤였다. 남들처럼 모았더라면 아버지는 지금쯤 수백 억 부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 실제로 같은 업에 종사하는 어떤 분은 그만한 돈을 모았다.

아버지는 지붕에 기와를 이는 장인이었다. 일꾼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기와를 놓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었는데, 언제나 원칙을 고수했다. 날림으로 공사를 하는 법이 없었고 자재도 제일 좋은 것들만 썼다. 외형만 그럴 듯하게 해서 단가를 후려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주문자가 정 그렇게 하길 원하면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면서 아예 공사를 맡지 않았다.

# 남들처럼 살기를 거부한 아버지

당시는 기와 시공이 호황이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마을 전체에서 기와를 새로 이는 일이 많았다. 마을 이장과 계약을 해서 한두 달 가량 마을에 머물면서 전체 공사를 하기도 했다. 시내에도 아직 기와집이 많아서 일거리는 언제나 넘쳤다. 아버지는 이 분야에서 이름이 나 대구ㆍ경북은 물론이고 전국을 다니면서 일을 했다. 만일 아버지가 원리 원칙을 버리고 ‘적당히’ 일을 처리했더라면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일에는 철저하셨지만 같이 다니는 일꾼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한번은 일꾼 한 명이 일이 끝난 후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다. 당시 아버지는 합의금 50만 원을 선뜻 내놓았다. 200만 원이면 집 한 채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20대까지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다 쉽게 가는데 혼자 원칙을 지키느라 돈도 많이 못 벌고, 가족보다 직원들을 더 알뜰히 챙기는 모습에 가슴이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이었다. 그 시절 나는 속으로 굳게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안 살겠노라고, 돈 벌 일이 있으면 확실히 벌고, 내 가족을 제일 먼저 챙기는 이기주의자가 되겠노라고.

# 아버지의 원칙주의로 사업 성공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고 사업을 하면서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원칙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물류업을 시작할 때도 직원들에게 늘 정직과 원칙을 강조했다. 원칙을 무너뜨리면 쉽게 갈 수 있지만 잘못된 길을 가기 십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덕인지 나와 비슷한 시기 사업을 시작한 이들 중에는 이미 자취 없이 사라진 이들이 적지 않다. 나는 그들이 실패한 원인을 가만히 생각해보곤 한다. 의외로 그들에게 큰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물류업은 대개 직원들의 비리로 망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들 실수와 비리로 사업을 그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도 결국 본인들 책임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편법을 허용하고 관리를 소홀하면 결국 큰 누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원칙을 고수하지 못한 것이 그들의 패인인 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그런 실수를 범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오늘날 거상물류가 티슈 부분에서 수도권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물량을 취급하고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

# 쉬워 보이는 길 끝에는 비탈이...

아버지가 옳았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정도’를 걷는 것이 정답이다. 쉽게 보이는 길은 그 끝에 비탈이 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 같은 분들이 곳곳에 있어서 우리 사회가 지탱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의무보다는 권리에 집중하고, 올바른 길을 버리고 잘못된 줄 알면서도 지름길로 내닫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다행히 사회 곳곳에서 원칙을 목숨처럼 알고 지키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종종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 의 한 구절이다.

하루는 어느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령공이라는 군주가 무도하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나라가) 멸망하지 않습니까?” 요즘도 이렇게 묻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소위 윗물이 이렇게 흐린데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걸 보면 신기하다고.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숙어가 빈객을 접대하고, 축타가 종묘를 모시고, 왕손가가 군대를 거느린다. 이와 같은데 어찌 멸망하겠느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수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윗물이 흐려도 사람들이 그럭저럭 맑은 물을 마시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그 훌륭한 ‘정수기’ 중의 하나가 내 아버지라고 확신한다.

내 아버지는 가진 기술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의 삶으로 나에게 돈보다 더 훌륭한 정신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것이 나와 내 자식들을 세상의 위험과 허무한 삶으로부터 굳건하게 지켜주는 든든한 성벽이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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