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미국 워싱턴은 갑자기 몰아 닥친 늦추위에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백악관은 예외였다. 아침부터 계속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환영 열기가 추위를 녹일 만큼 뜨거웠다. 절정은 오후 7시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둘러쳐진 천막 안에서 열린 국빈만찬이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 연예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의 웃음소리가 늦은 밤까지 끊이지 않았다.
만찬의 관심은 원래 올랑드의 파트너가 앉는 오바마 옆자리의 주인공에 모아졌다. 올랑드가 방미 직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와 결별하면서 독신 방문을 한 때문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 사이에 올랑드가 앉으면서 단독 방문의 어색함이 금세 사라졌다.
오바마는 '봉쥬르(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벌써 아는 프랑스 말을 다 써버렸다"며 자연스럽게 미국인이 좋아하는 '프랑스 필수품' 인 포도주, 영화, 음식 얘기를 꺼냈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9세기 초반 미국을 여행하며 접한 음식과 백악관에 좌절했다는 얘기로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바마는 "미국인은 프랑스의 어느 것보다 200년 이상 함께한 프랑스 친구들을 사랑한다"며 '비바 프랑스'를 외쳤다.
올랑드는 영어로 답사를 하며 "프랑스인은 늘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미국을 사랑한다"고 지금 양국 관계를 연인에 비유했다. 정상들이 주고받은 칭찬 속에 국가안보국(NSA)의 도청과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양국의 불편한 감정들은 씻기듯 사라졌다. 두 정상의 만찬 테이블에는 메추라기 알, 건조 숙성된 소 가슴살, 12종류의 감자, 캐비어가 놓였다.
오바마는 이날 아침 백악관에서 공식 환영식,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으로 올랑드를 예우했다. 전날에도 그는 도착하는 올랑드를 공항에서 마중한 뒤 전용기 에어포스원으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생가인 버지니아주 몬티셀로로 안내했다. 그 자리에서 오바마는 "모든 사람은 두 개의 조국을 가지는데, 바로 자신의 조국과 프랑스다"는 제퍼슨의 말을 인용해 올랑드를 달뜨게 했다.
올랑드는 이날 국무부 점심 때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콜린 파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환대를 받았다. 극진한 예우가 계속되자 백악관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에서 '프랑스가 영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유럽 맹방이 된 것이냐'는 프랑스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미국과 뗄 수 없는 특수관계인 영국을 부정할 수 없던 오바마는 즉답을 피한 채 두 딸 얘기를 꺼냈다. 그는 "딸 둘이 다 아름답고 훌륭하다. 나는 그 둘 중 누구를 선택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지금 유럽의 두 파트너에게 느끼는 감정이다"고 재치 있게 받아 넘겼다. 아프리카, 중동 문제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프랑스를 영국 수준으로 격상시켜 대우한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옆에 있던 올랑드는 "나는 자식이 네 명이나 있어 누구를 선택하는 게 더 어렵다"고 거들었다.
미 대통령들은 19세기 이래 외국 지도자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베푸는 것으로 예우했다. 그러나 국빈방문의 경우에만 열리는 국빈만찬 비용은 만만치 않다. 미 CBS방송이 올랑드에 앞서 오바마 정부에서 열린 다섯 차례 국빈만찬 비용을 확인했더니 200만달러(21억원)에 육박했다. 이중 2011년 한국 이명박 전 대통령 때가 가장 저렴한 20만3,000달러였다. 제일 비쌌던 때는 2009년 맘모한 싱 전 인도총리 만찬(57만2,200달러)이었다. 2010년 펠리페 칼데론 전 멕시코 대통령 만찬에는 56만3,500달러, 2011년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는 41만2,3달러를 썼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한 21만5,900달러였다.
이 전 대통령의 만찬비용이 가장 적기는 하지만 미국을 찾는 대다수 정상들에게 국빈만찬이 제공되지는 않기 때문에 단순히 돈으로 관계의 경중을 비교할 수는 없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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