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옳았던 게 아닐까?"
미국 대학에서 연수하던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진 바로 다음달 지도 교수를 찾았다. 태국과 홍콩에서도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연구, 경제위기에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미국은, 아니 세계는 어떻게 될지 물었더니, 씨~익 웃으며 이렇게 반문하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내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홍콩 펀드매니저에게 보름 전 반만 팔라고 했더니, 어제 확인해 보니 글쎄 다 팔았대!" 글로벌 금융자본주의의 첨단에서 과실은 과실대로 향유하면서 마르크스라?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불경스럽게도 '참 숭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6년 전의 에피소드를 떠올린 건 당시의 그 느낌이 최근 미국의 행태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위기의 진원지로 지구촌을 수렁으로 몰아 넣었던 나라, 시장 근본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대는 극약 처방으로 경제를 끌어 올린 나라, 그리고 이제 달러 창고가 빈약한 신흥국들이 결딴 나든 말든, 돈 줄을 죄며 제 갈 길을 가는 나라 말이다. 올해 미국 경제는 확실히 대세 상승기에 접어든 모양이다. 영국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위기 이전 세계를 호령했던 두 나라의 부활로 한 때 역사의 박물관에 보내질 것 같았던 신자유주의도 복권되는 건가? 이제 다시 민영화와 규제 철폐, 복지 축소와 노조 약화, 부자 감세와 작은 정부를 외쳐야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가? 철도를 비롯한 공공부문 개혁 및 규제 완화를 둘러싸고'민영화' 논란이 국내에서 불거지면서, 떠오르는 의문들이다.
사실 위기 이후의 여정을 돌아보면 답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금융위기(시장의 실패)와 유럽 재정위기(정부의 실패)에서 보듯, 시장도 정부도 한계가 분명해진 만큼 한 쪽에 올인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양쪽의 협업 내지는 협치(協治)만이 대안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개혁이든, 규제완화든 협업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해법이 보인다는 말이다.
먼저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로 규정하는 공공부문 개혁을 보자. 협업 패러다임이 적용되려면 공공성을 측정해 낼 공통적, 계량적 지표가 있어야 한다. 특정 부문을 계속 공공영역으로 묶어둘 지 여부를 판별할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1960, 70년대 연탄을 때던 시절 최고의 인기 직장이었던 석탄공사가 지금도 존속해 적자의 늪에 허덕이는 게 바람직한 지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공공성 지표가 높은 건 정부가 맡고, 낮은 건 퇴출시키거나 과감히 민간에 넘기는 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등 서비스 분야 규제완화는 공공성 문제와 충돌, 사회적 이슈가 되기 십상이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가치와 공공의료의 질 저하 우려가 상충한다. 때문에 관련 시장은 시장대로 키우면서도 공공의료는 유지ㆍ강화하는 협업 전략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달 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액션플랜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474비전(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현안들은 성장 잠재력 약화와 고령화, 저출산, 복지수요 폭증 등 구조적ㆍ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키는, 철 지난 관치(官治)경제 패러다임이나, 모든 것을 경쟁원리로 접근하겠다는 표피적 사고로는 풀 수 없다. 이 시대에 필요한 신사고는 관치가 아니라 협치이며, 시장만능이 아니라 협업이다. 정부의 역할과 시장의 할 일을 구분하면서도 양측의 장점을 최대한 접목하는, 치열한 고민이 3개년 실행계획에 담겨야 한다. 혁신이 필요한 분야는 시장이, 공공성이 중요한 영역은 정부가 더 큰 몫을 하는 역할재조정이 있어야 한다. 유들유들한 실용적 사고로 국민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낼, 한국식의 '참 숭악한' 혁신 플랜 제시를 정부에 주문하고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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