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와는 다른 재닛 옐런 만의 색깔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취임 후 첫 공식무대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강조한 건 통화정책의 연속성이었다. 그는 "Fed 이사(부의장)로서 현재 통화 전략을 수립하는데 관여해왔고 이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했다. 당연히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은 지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꽤 우호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증시는 이날 1% 넘게 올랐고, 곧 이어 개장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대체로 상승했다. 환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불과 10여일 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100억달러 추가 테이퍼링을 결정했을 때만해도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을 쳤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고, 또 시장은 무엇에 안도하는 것일까.
테이퍼링 지속이 신흥국을 압박하는 건 여전하다. 옐런 의장은 "Fed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미국 경제에 실질적인 위협을 주지는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신흥국 위기 상황에 관계 없이 미국 경제 상황만을 보고 통화정책을 펼쳐나갈 것임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옐런이 신흥국들에게 차갑게 등을 돌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식시장이 상승으로 화답한 것은 이제 테이퍼링을 거부할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최호상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테이퍼링의 충격은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이 됐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 터키 등에서 촉발된 신흥국 위기도 조금씩 수그러드는 분위기. 특히 이들 국가의 위기의 본질이 테이퍼링이 아니라 내부 정치ㆍ경제적 요인이라는 해석이 더욱 힘을 얻어가는 추세다.
시장이 테이퍼링보다 더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초저금리 탈출 시점에 대한 옐런의 견해였다. 1월 미국의 실업률이 6.6%까지 떨어지면서 당초 Fed가 금리 인상의 조건으로 밝힌 '실업률 6.5%'에 거의 근접했기 때문. 옐런 의장은 "실업률이 6.5% 아래로 떨어진 시점을 훨씬 지나서(well past)까지 초저금리를 유지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의 취임 이전부터 Fed에서 나오던 얘기를 재차 강조한 것이지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다는 점에서 시장은 반색했다. 특히 그는 노동시장에 대해서 "실업률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6개월 이상 실업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등 노동시장 회복은 아직 멀었다"며 "이는 노동시장 상황을 평가할 때 실업률뿐 아니라 더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더 이상 금리 인상의 근거로 실업률만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임을, 그래서 섣불리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시장의 눈과 귀는 다시 13일 상원 청문회에 쏠리고 있지만, 그가 크게 다른 견해를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옐런 의장이 언급한 것처럼 "경제 전망에 현저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당분간 이 행보는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정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옐런이 아니라 어느 누가 의장 자리에 오더라도 다른 입장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며 "의장의 성향과 색깔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Fed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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