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선 장관생면부지 돌보미에게 아이 맡기고 출근했을 때 가슴 아파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발굴해 인센티브 등 부여할 것● 김민정 상무일·가정 양립 예산은 투자… 가족친화적 기업이 성과 좋아정부와 기업이 서로 협조해 나갈 수 있는 로드맵 있어야
'일과 가정의 양립'은 꿈에 그칠 것인가. 정부는 지난주 관계부처 합동으로'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 주기별 경력 유지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직장과 가정 일을 함께 하느라 분주하게 뛰는 여성들이 늘고 있지만 일과 가정의 진정한 양립은 아직도 머나먼 별처럼 인식되고 있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함께 다녀온 조윤선(48) 여성가족부 장관과 김민정(40) 한화갤러리아 상무를 만나 여성들의 고충과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김 상무는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인사 중 유일한 여성 대기업 임원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방안'을 주제로 열린 대담은 10일 여성가족부 청사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두 사람은 여러 일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여성의 고충을'저글링'과'접시 돌리기'에 비유했다. 조 장관은 "30대 시절 한 살, 다섯 살의 두 딸을 생면부지의 아이 돌보미에게 맡기고 출근할 때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김 상무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독일에서 근무할 당시 어린 딸이 아파서 체온이 41도까지 올라갔는데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일해야 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가족친화적 경영을 하면 영업이익이 올라간다는 점을 알려 기업들이 적극 나서도록 하겠다"면서 "고위공무원 임용 후보의 3배수에 반드시 여성이 포함되도록 해서 현재 9.93%인 4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을 2017년까지 15%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예산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면서 "가족 친화적 기업의 업무 성과가 좋아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두 분은 '유리 천장'을 뚫고 각각 장관과 대기업 임원이 됐다. 학창 시절에 이런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대학에 들어갈 때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뒤 꿈이 자꾸 바뀌었다. 변호사로 지낼 때는 기업 인수ㆍ합병(M&A)을 다루는 동료를 보면서 '저런 변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융기관, 국회를 거쳐 행정부에 오게 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조 장관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한국씨티은행 부행장,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변인 등을 지냈다. 두 딸을 두고 있는 워킹맘이다).
김민정 한화갤러리아 상무= 대기업 임원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이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오다 보니까 이 자리에 앉게 됐다. 이공계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연구만이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는 등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업의 CEO나 임원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김 상무는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서 화학 석사ㆍ박사학위를 받은 뒤 외국계 회사를 거쳐 한화갤러리아 전략실장이 됐다. 독일 유학 때 만난 독일인 남편과 7세의 딸이 있다).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즐겁게 생각하는지.
김 상무= 이게 종착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 자체도 흥미 있지만 조직을 움직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좋다. 백화점 임원이기 전에 소비자다. 소비자들의 생각을 잘 읽고 즉각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전략실장을 맡고 있다.
조 장관= 재미있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판단 기준은 '저 일을 하면 가슴이 뛸 수 있을까'였다. 그 동안 변호사, 당 대변인, 국회의원, 대통령후보 대변인 등을 지내는 과정에서 재미있게 일했다. 일하면서 전파력을 지닌 방안을 항상 생각했다. 최근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 축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만화 기획전'을 연 것도 그런 맥락이다. 예술은 하늘을 나는 양탄자와 같다. 그 위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올려놓으면 상대방에게 사뿐히 가져다 준다.
-직장 일과 가사를 병행하느라 힘든 일이 적지 않았을 텐데.
조 장관= 아이를 낳기 전에는 공부하거나 일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니까 달라졌다. 일에 최선을 다하면 아이들이 버려지고 아이들에 몰입하면 직장의 업무 성과가 저조해진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어려웠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김 상무= (고개를 끄덕이다가) 남의 일 아니다. 여러 개의 공을 던져 떨어뜨리면 안 되는 저글링을 하는 것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결정하고 내가 한다고 했다. 그런데 출산 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양육하는 과정에서 남편, 가사도우미, 부모형제, 친구 등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줬다. 도와주는 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저글링의 또 다른 공이 된다.
조 장관=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을 '접시 돌리기'라고도 한다.
-직장과 가정 일을 동시에 하면서 매우 힘들었던 사례를 소개한다면.
김 상무= 우리나라에선 주변 사람의 도움을 이끌어내 견딜 수 있다. 몇 년 전 독일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사는 곳은 프랑크푸르트였고 일하는 곳은 멀리 떨어진 뮌헨이었다. 눈이 펑펑 오는 겨울에 뮌헨으로 일하러 갔는데 아이 체온이 41도까지 올라간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던 일들을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최단 시간 내에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너무 힘들었다.
조 장관= 30대 때 첫째, 둘째 딸을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도와주셨다. 한 아주머니는 7년 계셨고. 다른 아주머니는 10년째 일하신다. 너무 좋은 분들이어서 친구들이'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라고 말한다(웃음). 하지만 그 사이에 아이돌보미들이 자주 바뀐 시절이 있었다. 1주일, 2주일 단위로 바뀌기도 했는데, 직업소개소에서 보낸 생면부지의 아주머니에게 어린 두 딸을 맡기고 출근할 때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곤충이라도 좋으니 남자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 직장 내에서 아직도 성 차별이 적지 않은데.
조 장관= 우리나라에서 입사할 때는 여성이 30~40%를 차지해도 임원급 여성은 1%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친다. 왜 그렇게 되는가. 승진 인사를 할 때는 후보자들의 성과를 본다. 그런데 대다수 여성들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보직을 받지 못한다. 외국계 기업들은 성 차별 인사를 없애기 위해 승진 후보자 3명 중 최소한 1명은 여성으로 골라 성과를 낼 수 있는 보직에 임명한다. 인사 기획과 관리가 중요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 상무= 정부가 정책적 틀을 깔아주고 기업이 정책 기조를 받아서 밀고 나가는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2010년 글로벌 인재 채용 설명회에서 회장님이 "우리가 화약 제조업으로 시작해 여성 인력이 부족했지만, 조만간 여성 CEO를 배출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성 인력 양성 의지를 보여 주셨다. 작년에 'WITH' 란 태스크포스를 만들어서 육아기 근로시간 선택 조정, 난임 임직원 지원 등의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직장어린이집이 생기는 결실을 거두게 돼 너무 기분이 설렌다.
조 장관= 여성가족부는 중소기업의 가족친화 경영 확산을 위해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경제단체와 협력해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나가겠다. 또 각 부처의 일과 가정 양립 정책 추진 상황을 점검해서 끊임 없이 개선 사항을 발굴할 것이다. 일과 가정 양립의 우수 사례를 발굴해서 이런 투자를 했더니 영업이익이 올라갔다고 알려서 기업 스스로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겠다. 지난주 발표한 정책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한다면 부부 중 두 번째 육아휴직 사용자의 첫 1개월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상향 지급하는 방안이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육아휴직과 관련된 비용들을 정부와 기업 중 누가 부담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 남성들의 도움도 필요할 텐데.
김 상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예산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족친화적인 기업이 업무 몰입도, 근무 만족도, 업무 성과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낸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저희 회사에 생긴 직장어린이집 지원자의 절반은 남성 인력이다.
조 장관= 정부는 가족친화 경영을 하면 영업 이익이 크고 숙련 근로자의 이직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알릴 생각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삶의 여유를 즐기면서 일할 때의 창의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족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성 평등 순위에서 한국은 136개국 중 111위에 그쳤는데.
조 장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현저히 낮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낮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
김 상무= 남녀의 임금 격차가 큰 데다, 여성의 중간관리직 비율이 현저히 낮은 점도 영향을 줬다.
-박근혜 정부가 당초 예상보다 여성을 고위직에 덜 기용하는 것 아닌가.
조 장관=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을 중용할 의지를 갖고 있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처음으로 역설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 시대가 된 뒤로 방송사, 금융기관, 검찰, 경찰 등 각계 인사 기사에서'최초의 여성'이 계속 거론되고 있다. 여성 대통령이 여성의 고용률과 사회 참여를 말씀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여학생들에게 롤 모델로 거론되는데, 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한다면.
김 상무= 자기가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일을 해라.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포기하지 말라. 혼자 힘으로 안 되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라. 갚으면서 살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조 장관=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을 선택하라. 선택한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라. 즐기면서 일하라. 그리고 내가 못할 것은 없다, 여성이란 한계는 없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담 진행=김광덕 선임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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